- 해군대학교 초청강연 "도덕경의 리더쉽" 강의록 제1부
이 글은 지난 15일 대전의 해군대학교에서 했던 강연의 강의록입니다. 해군대학교 총장님의 초청으로 가지게 된 강연이었는데요, 이 강연을 들은 수강인들은 대부분이 영관급 장교인 해군대학교 학생으로 약 200명 정도가 들어가는 강의실을 가득 메우고 진지하고 열성적으로 들어주셨습니다. 총장님도 바쁜 스케줄 중에서도 시간을 내셔서 강의에 참석해 주셨습니다. 그 분들의 면면에서 저는 한국 해군의 영광에 찬 내일을 보았습니다. 원래 이 강의는 구름타운 가족들하고는 별 관계가 없는 군사적인 내용이 많아서 소개를 안 하려고 했는데, 호주머니님을 비롯해서 몇몇 가족들이 요청하심으로 그냥 가볍게 한번 보시라고 올려드립니다. 이날 강연의 제목은 “도덕경의 리더십”이었습니다.
---------------------------------------------------------------------------------------------------------------------------- 노자의 도덕경은 세계에서 가장 오랜 동안, 그리고 가장 심하게 그 내용이 잘 못 이해되어 온 책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노자가 살았던 춘추시대로부터 지금까지 약 2천 5백년의 세월이 흘렀는데요, 이 2천5백 년 동안 무수히 많은 학자들과 도사들, 수행자들, 전문가들이 주석을 달고, 주해를 짓고, 강해를 해 온 것이 도덕경이라는 책입니다. 그런데 2천 5백년이라는 기나긴 세월 동안 셀 수도 없는 그 많은 사람들이 해석하고 가르쳐 온 것이 전부 다 틀렸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부분부분 어느 정도 오류가 있거나 오해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거의 80% 이상 원전의 내용을 잘 못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중국, 일본 등을 망라해서 동양학의 전문가들, 한학자들, 대학교수들 중에 도덕경을 똑바로 읽을 줄 아는 사람이 단 한사람도 없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저의 이 말이 믿어지십니까? 도덕경이라는 책의 올바른 의미가, 노자사상의 진의가 처음으로 세상에 밝혀진 것은 불과 6년 전의 일입니다. 누가 그것을 밝혔겠습니까? 마산에 사는 이름 없는 주부가 그 일을 했습니다. 그게 바로 여러분 앞에 서 있는 이 사람입니다. 그때 도올 김용옥이 “노자와 21세기”라는 고전강의로 상종가를 치면서 인기를 구가하고 있었습니다. 도올이 그때 했던 강의의 내용은 도올만의 독창적인 것이 아니라 모든 동양학자들이 도덕경을 해석해 오던 내용을 걸직한 입담으로 재미나게 떠든 것이었습니다. 도올의 죄는 모든 학자들이 2천5백 년 동안 가르쳐 온 내용을 별 생각 없이 자기가 배운 대로 떠들었다는 것뿐입니다. 그러나 누가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그 2천5백년의 학설이 전부 다 엉터리라는 것을 말입니다. 제가 도올의 티비 강의 내용을 조목조목 짚어가면서 오류를 수정해 준 책 “노자를 웃긴 남자”가 2000년에 출판된 후에 국내의 대학에서는 도덕경 강의가 끊겼습니다. 이제는 누구도 노자의 사상을 아는 체 하며 학생들을 가르치지 못하게 됐습니다. 각 대학의 동양학과 학생들을 “노자를 웃긴 남자”를 읽고 리포트를 써내는 것으로 노자 수업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전 세계에서 노자의 사상을 똑바로 알고 도덕경을 바로 읽을 수 있는 오직 한사람인 제가 처음으로 공개적인 자리에서 도덕경을 강의하는 자리입니다. “노자를 웃긴 남자”가 한국 인문학 계통의 저서로서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고 베스트셀러가 된 후에, “이경숙 완역도덕경”이 이어서 나왔습니다. 그 후에 여러 방송과 대학 등에서 강의요청이 있었지만 단 한 번도 응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노자의 가르침 자체가 아는 척 사람들 앞에 나서서 떠들지 말라는 것이었기 때문에 도덕경을 가지고 강의를 하고 다니거나 그것으로 돈을 벌고 혹은 이름을 날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랬던 제가 왜 오늘 이 자리에 섰느냐 하면 제 강의를 들으실 분들이 이 나라의 해군 장교들이기 때문입니다. 저의 강의를 요청한 분들이 해군이라서 왔습니다. 왜 제가 해군에 사족을 못 쓰겠습니까? 제가 태어나서 자란 마산의 바로 이웃에 진해라는 항구도시가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벚꽃 구경을 하러, 시민들한테 한 번씩 공개하는 군함을 보러 아버지 손을 잡고 놀러갔던 곳입니다. 진해에서 볼 수 있었던 하얀 해군복을 입은 장교들은 어릴 때 저의 선망의 대상이었습니다. 나중에 자라서 시집을 가면 해군장교한테 가야지 하고 생각했던 어린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 외에도 제가 유별나게 해군을 좋아하는 이유는 따로 더 있는데요, 하여간 저는 해군이라면 어릴 적부터 몹시도 좋아했었습니다. 제 강의가 혹시라도 우리나라의 해군을 이끌어 갈 장교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제가 여기까지 달려온 보람이 있겠습니다.
지금까지 사람들은 도덕경을 형이상학적인 철학서 혹은 종교사상서 내지는 아주 난해한 우주학 정도로 이해를 해 왔습니다. 그건 도덕경이라는 책을 잘 못 읽었기 때문이고, 원전에 대해 의미의 번역조차 똑바로 못했기 때문입니다. 도덕경이라는 책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리더쉽에 대한 설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지도자학에 대한 논문인 것입니다. 저는 노무현대통령이 노자의 도덕경을 한번만이라도 정독을 했다면 저렇게 많은 실수들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도덕경을 어떤 사람들이 읽어야 하느냐? 정치인들이 읽어야 합니다. 기업의 총수들이 읽어야 합니다. 군의 고위 장성들, 고급 장교들이 필독해야 합니다. 어떤 분야를 막론하고 리더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도덕경 이상의 리더쉽 교과서를 찾지 못할 것입니다. 이 자리에 계신 분들은 누구나 해군의 고급지휘관이 되고, 함대의 사령관이 돼서 탁월한 제너럴쉽의 모범이 되고 싶을 것입니다. 맞습니까? 그렇게 되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도덕경을 읽으셔야 합니다. 오늘 강의를 듣고 나면 왜 군의 장교들은 도덕경을 배워야 하는가를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장교들은 리더쉽의 화신이기 때문이고, 제너럴쉽이 그 본성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한국 해군이 어떤 해군입니까? 반만년 역사에서 져본 적이 딱 한 번밖에 없는 해군 아닙니까? 임진란 때 원균이 칠천량 앞바다에서 막강했던 조선수군을 처박은 것 외에 우리나라가 바다 싸움에서 져 본 적이 없습니다. 수와 당이 고구려에 진 이유는 서해바다의 제해권을 장악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전 세계의 수많은 유서 깊은 제국들을 글자 그대로 말살했던 몽고가 유독 고려를 부마국으로 삼아 원 황실의 여자를 시집보내면서 국체를 온존시켰던 이유도 바로 고려의 수군에 크게 데인 때문입니다.
임진왜란 때 일본의 군사력은 동시대의 유럽 전부와 맞먹었습니다. 만약 일본이 당시에 유럽에 있었다면 일본은 유럽을 통일했을지도 모릅니다. 히데요시가 동원할 수 있었던 병력은 30만 명에 달했고, 당시 일본이 보유했던 조총의 수는 전 유럽의 왕들이 보유했던 수를 상회했습니다. 거기다가 일본은 100년에 걸친 전국시대의 내전을 거치면서 수많은 실전으로 단련된 군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히데요시의 명나라 정벌은 황당무계한 망상이 아니었습니다. 명나라는 다음 세대에 만주족에 멸망 당하지만 누르하치의 팔기군보다 히데요시의 왜군이 더 강력했습니다. 단 하나의 변수만 아니었다면 명나라는 여진이 아니라 왜군에 멸망당했을 겁니다. 그것을 피하게 해 준 그 하나의 기적이 뭐였습니까? 바로 이순신의 조선 수군이었습니다. 조선수군이 아니었다면 동양의 역사는 백팔십도로 바뀌었을 것이고, 전 세계사가 달라졌을 것입니다. 조선수군의 힘의 원천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도대체 무엇이 임진란 때의 조선수군이 세계 최강, 최대의 군대와 싸워 백전백승을 거두었다고 보십니까? 그것은 바로 이순신장군의 리더쉽인 것입니다. 충무공의 제네랄쉽이 조선수군의 힘의 원천이요 토대였던 것입니다. 러일전쟁 때 황해와 대마도 앞바다에서 러시아의 여순함대와 발틱함대를 바다 속에 처넣은 일본의 연합함대 사령관 도오고오가 그토록 흠모하고 본받으려고 평생을 애썼던 제네랄쉽은 바로 충무공의 것이었습니다. 이순신과 도오고오의 리더쉽은 노자의 사상에 닿아있습니다. 도덕경의 리더쉽이 바로 동양이 낳은 두 위대한 제독의 리더쉽이 나온 원천인 것입니다. 그 위대한 리더쉽을 고작 100분 동안의 강의로 얼마나 전달을 해드릴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저의 강의가 이 나라 해군의 리더쉽을 확고히 하는 데 일조를 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제 도덕경의 원문들을 보면서 노자의 리더쉽을 배워 보겠습니다. 도덕경은 81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총 글자 수는 약 5천자인데, 매 장의 구성은 대략 비슷합니다. 아주 거창한 우주론이나 형이상학적인 철리를 설파하는 듯한 난해한 구절들이 먼저 몇 구절 나열이 됩니다. 그리고 뒤이어 본론이 나오는데 본론의 내용들은 아주 소박합니다. 즉 지도자론이며, 군주의 도를 설명합니다. 노자가 말하는 성인은 요순이나 예수나 혹은 석가와 같은 인간의 범주를 벗어난 초인이 아니며, 성인지도라는 것은 인간 사회의 모든 리더들이 다 실행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아니 리더라면 반드시 실천하지 않을 수 없는 경구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그러나 노자의 리더학은 공자의 왕도와도 다르고 오늘날의 리더학이나 처세술이 가르치는 것과도 많이 다릅니다. 한번 볼까요.
제 44장 “지족(知足)”이라는 장의 내용입니다. 명여신숙친(名與身孰親), 신여화숙다(身與貨孰多), 득여망숙병(得與亡孰病), 시고(是故), 심애필대비(甚愛必大費) 다장필후망(多藏必厚亡).
첫 구절의 명은 “이름 명”자지요. 여는 “줄 여, 더불 여”자인데 이때는 비교한다는 의미로 쓰였습니다. 신은 몸입니다. 그러니까 “명여신(名與身)” 하게 되면 “이름과 몸을 비교하면”이라는 말입니다. “孰”은 “누구 숙”. “숙친(孰親)” 하게 되면 어느 게 더 친한가? 라는 말입니다. 주욱 붙여서 읽어보면 이름과 몸을 비교하면 어느 것이 더 친한가? 하고 묻는 말이 됩니다. 명성과 자신의 몸 중에 어느 쪽이 더 소중하냐 이 말이지요. 유교의 입장에서는 이 말에 대한 대답이 몸보다 이름이 더 중하다로 나올 수 있습니다. 유교의 지향하는 바는 입신양명(立身揚名)입니다. 출세하여 이름을 떨치는 것이 유교의 목표입니다. 그래서 유학자들 중에는 명예 때문에, 이름 때문에 목숨을 초개처럼 버린 사람들이 허다합니다. 이름을 더럽히느니 차라리 죽고 만 사람들이 숱하게 많았지요. 공자의 가르침인 군자지도라는 것도 리더쉽의 한가지입니다. 그러나 공자의 리더쉽은 리더가 되기 위해 일신의 안위를 돌아보지 않는 지사, 열사의 리더쉽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름을 위해서 몸을 던지는 면에서 유교의 리더쉽은 일본의 무사도와 비슷한 비장함이 깔려있습니다. 그러나 노자는 좀 다르게 말합니다.
“신여화(身與貨)”, 마찬가지로 “몸과 재물을 비교하면” “숙다(孰多)?” 어느 쪽이 더 많은가? “신여화숙다(身與貨孰多)”를 붙여서 읽으면 “몸과 재산을 비교하면 어느 쪽이 더 많은가?”라는 질문입니다. 어느 게 더 많습니까? 재산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몸은 하나뿐이지요. 그래서 노자는 다음과 같이 묻습니다. “득여망(得與亡)”, “얻거나 잃었을 때를 비교하면”, “숙병(孰病)”, “어느 쪽이 병이 되겠느냐?” 하고 말입니다. 이름과 몸, 재산과 몸을 비교할 때 어느 쪽을 얻고 잃을 때 병이 되겠는가 하고 묻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이 질문에 대한 노자의 대답이 나옵니다. “시고”, 그러므로... “심애필대비((甚愛必大費)”, “너무 애착을 가지면 반드시 크게 댓가를 지불한다”인데 이때의 대상은 첫 구절의 이름입니다. 자기 이름을 너무 사랑하면 반드시 큰 비용을 치른다는 말이지요. “다장필후망(多藏必厚亡)”, “많이 갖고 있으면 반드시 크게 망한다”는 소립니다.
노자는 명예나 재물보다는 자기 몸이 더 소중하다고 말합니다. 이름보다는 몸이 더 나에게 친하고 재산은 많지만 몸은 하나뿐이니 부디 이 몸을 잘 간수하라는 당부입니다. 그래서 이어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지족불욕(知足不辱)”이요 “지지불태(知止不殆)”이니 “가이장구(可以長久)”니라. 풀이해 보면 “족함을 알면 욕을 당하지 않고, 그칠 줄 알면 위태롭지 않나니 가히 오래 오래 가느니라”하는 소립니다. 노자의 리더쉽은 위험을 무릅쓰고 성공을 쟁취하고, 일신의 안위를 돌보지 않고 천하의 공리에 몸을 던지는 그런 리더쉽이 아닙니다. 천하를 말없이 이끌면서도 자기 한 몸을 다치지 않고 결코 위험한 사지에 들어서지 않는 가장 현명하고 지혜로운 리더쉽을 말합니다. 이것이 노자의 리더쉽이 세상에서 가장 탁월한 이유입니다. 다치지 않는 리더쉽, 싸우지 않는 리더쉽, 부드러운 리더쉽을 노자는 2천5백 년 전에 세상에 설파했던 것입니다. 21세기야말로 이런 리더쉽이 필요한 시기이고 지금의 대한민국은 이런 리더쉽에 목말라있는 나라입니다. 우리나라의 정치권을 보십시오. 아귀다툼의 리더쉽이고, 내일 어찌될지 모르는 백척간두의 리더쉽이고 하루를 잘 살고 10년을 비탄 속에 빠지는 그런 리더쉽들이 나라를 이끌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티비에서 고려시대의 무인정권을 드라마로 방영한 바가 있는데요, 정권을 잡았던 무장들의 거의 전부가 비참한 최후를 맞았습니다. 자기가 죽인 전 권력자의 최후를 자기 눈으로 보고도 그 전철을 그대로 밟다가 자기 역시 똑같이 비참한 최후를 맞는 일이 백년을 두고 되풀이 되었습니다. 그만큼 인간은 교훈을 받아들이는 것이 늦고 어리석은 동물입니다. 그래서 노자는 말합니다. “족함을 알면 욕을 당하지 않고, 멈출 줄 알면 위태롭지 않다”고 말입니다. 노자의 리더쉽은 단지 리더가 되기 위한 준칙이 아니라 리더쉽의 최고의 경지, 리더쉽의 완성을 말합니다. 나라와 민족을 이끌고 10만의 대군을 지휘하는 것이 리더쉽이 아닙니다. 그러다가 지 한 몸 위태롭게 만들어 비참하게 죽게 되면 그런 리더의 자리가 무슨 소용이며, 그런 리더쉽이 무슨 가치가 있겠습니까? 우리 근대사는 족함을 모르고 멈출 줄 몰랐던 비극으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박정희대통령을 보십시오. 조국근대화의 초석을 쌓고도 족함을 모르고 멈출 줄 몰라서 3선개헌을 하고, 유신개헌을 한 끝에 부하의 총에 죽었습니다. 박대통령의 리더쉽은 세계 정치사에 손꼽힐 만큼 탁월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리더쉽은 결국 나라와 본인에게 불행을 가져왔습니다. 김종필씨도 마찬가집니다. 30대에 혁명을 하고, 공화당을 창설하고, 한 나라의 최고정보기관을 자기 손으로 만들었습니다. 한일국교를 정상화했고 일인지하 만인지상이라는 국무총리를 젊은 나이에 했습니다. 대통령을 못했다 뿐이지 출세의 정점에는 이미 올라가고 내려오기를 여러 번 한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그의 리더쉽에는 지혜로움이 결여되어 있었습니다. 그칠 줄 몰랐고 족함을 몰라서 여든이 넘도록 정치판을 떠나지 못하다가 “아름다운 황혼”이 아니라 노추의 굴욕을 맛보고 퇴장 당했습니다. 리더쉽이 이런 수준에 머물러 있는 정치인들이 나라의 지도층을 이루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이 언제나 시끄러운 까닭입니다.
저는 고건의 은퇴를 높이 평가하는 편입니다. 저렇게 깨끗이 그만둘 줄 아는 것이 욕을 당하지 않는 길입니다. 자기의 한계와 능력을 정확하게 아는 것이 바로 올바른 리더쉽의 토대인 것입니다. 리더쉽을 위태롭게 만드는 것이 바로 자신에 대한 과대평가요, 지나친 욕심인 것입니다.
저는 사회 각계각층의 리더들이 노자 도덕경의 44장 하나만 명심해도 복되고 편안한 말년을 누리면서 세인의 추앙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노자말씀을 하나만 더 들어볼까요? 제46장 “상족(常足)”입니다. “천하유도각주마이분(天下有道却走馬以糞)”이요, “천하무도융마생어교(天下無道戎馬生於郊)”라... 이게 무슨 말일까요? “천하유도(天下有道)”, “천하에 도가 있으면”, “각주마이분(却走馬以糞)”, “각(却)”이라는 글자는 “물리칠 각”입니다. 그래서 “각주마”의 뜻은 “달리는 말이 물러나 있게 된다”는 뜻입니다. “이분(以糞)”에서 “분(糞)”은 똥입니다. 그러니까 달리는 말이 똥이나 싸면서 놀게 된다 그런 뜻입니다. 다음 구절에서 “융마생어교(戎馬生於郊)”는 오랑캐의 말이 성 밖에서 태어난다는 말입니다. 오랑캐의 말이 자기나라 초원이 아니라 우리 마을 어귀에 와서 태어난다는 것이 무슨 말이겠습니까? 바로 오랑캐가 쳐들어온다는 뜻이지요. 천하에 도가 없어지면 오랑캐가 업수이 여겨 쳐들어온다는 말입니다. 전쟁과 평화를 정말 기가 막힌 시적인 표현으로 비유를 해 놓은 것입니다. 지금 시중에 나가서 도덕경 해석서라는 책들을 사 보면 이 구절의 해석이 이렇습니다. “천하에 도가 있으면 군마를 민간에 분양해서 경작하는데 쓴다”는 식입니다. 그 정도로 도덕경의 해석이 엉터리로 되어 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뒷구절은 “군마가 들판에서 새끼를 낳는다”고 되어 있는데 “교(郊)”라는 글자는 그냥 들판이 아니라 성 밖의 교외를 말합니다. 이런 간단하고 단순한 문장조차 단 한구절도 똑바로 해석되지가 않았습니다. 죄다 엉터리였습니다. 다음 구절을 보죠.
“화막대어부지족(禍莫大於不知足)”이요 “구막대어욕득(咎莫大於欲得)”이라... 족함을 알지 못하는 것보다 더 큰 화는 없고, 얻으려는 욕심보다 더 큰 재앙은 없다. “고(故)”, “지족지족(知足之足)”이면 “상족의(常足矣)”니라. 그러므로 족함을 알고 만족하면 늘 만족하느니라.
저는 우리나라를 사기공화국이라고 생각합니다. 사기를 치는 데는 한국보다 쉬운 나라가 없고, 사기 치는 능력은 비상하게 발달한 천재들이 득시글거리는 나라가 한국입니다. 산마다 골짜기마다 사이비 종교의 교주들이 하나씩은 다 앉아서 예수님 형 노릇을 하고, 부처님의 재림인듯 행세하는데 그런 사기꾼마다 따라다니는 똘마니들이 도라꾸로 두 대씩 싣고도 남는다는 겁니다. 제이유 사건에서 보듯이 황당무계한 피라미드 사기, 금융사기... 우리나라 곳곳에서 벌어지는 사기극은 그 종류와 가짓수가 셀 수조차 없습니다. 하나같이 세 살 먹은 아이들도 황당무계한 소리라는 것을 알 수 있는 유치한 사기극인데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너무나 잘 속아 넘어갑니다. 무식해서 그러냐? 천만의 말씀입니다. 사기극의 피해자들은 무식한 계층보다 오히려 식자들이 더 많습니다. 고위공무원. 대학교수, 심지어는 판검사들 부인네들까지 으레히 대형 사기극이 터지면 피해자로 등장합니다. 최고학부를 졸업한 엘리트들이 국졸의 교주 밑에서 사이비 종교의 하수인 노릇을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사기는 절대로 사기꾼이 능란하고 사기극이 교묘해서 성공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사기가 성공하는 이유는 오직 한 가지뿐입니다. 그건 바로 사기를 당하는 사람의 욕심입니다. 일확천금의 욕심, 노력 없는 대박, 남의 것에 대한 탐욕이 사기를 성공시키는 유일한 요인입니다. 제 아무리 천하제일의 사기꾼일지라도 욕심이 없는 사람, 불로소득을 바라지 않는 사람, 이유 없는 횡재를 기대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사기를 칠 수 없습니다. 제가 아는 한 모든 사기극에서 그 책임의 99.9%는 사기의 피해자에게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다 욕심이 부른 재앙입니다. 이 장의 노자 말씀은 사기공화국 대한민국 사람들이 이마에 붙여놓고 아침저녁으로 독송을 해야 할 경구입니다.
“족함을 알지 못하는 것보다 더 큰 화는 없고, 얻으려는 욕심보다 더 큰 재앙은 없다. 고로 족함을 알고 그것에 만족하면 늘 만족할 수 있느니라.”
그런데 이런 구절들을 보면 다 좋은데 약간 의아한 생각도 들죠. 처세의 경구로는 썩 좋은 말인데 이게 어떻게 리더쉽이 될 수 있는가 하는 생각 말입니다. 리더라는 것은 남들의 앞에 서서 무리를 이끌어가는 능력과 자질입니다. 제너럴쉽은 군대를 지휘하는 통솔의 도를 말합니다. 그 이면에는 인간의 명예욕이라는 것과, 성취욕, 정복욕, 권력욕이라는 본성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런데 족함을 알아라, 그칠 줄 알아라. 이름에 집착하지 마라. 많이 가지려고 하지 말라 등등의 가르침은 리더쉽의 본질과는 배치되는 것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노자의 사상을 깊이 공부해서 그 정수에 다다르게 되면 이런 것이야말로 최상의 리더쉽이 가져야 하는 필수불가결한 덕목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노자가 말하는 것은 일반적인 리더쉽이 아니라 최고수준의 리더쉽이요, 대대장, 연대장의 제너럴쉽이 아니라 일국, 일군의 제네랄쉽인 것입니다.
지족을 모르는 리더쉽이 나라와 민족, 나아가서는 세계에 재앙을 가져온 사례는 셀 수가 없습니다. 리더쉽이 잘못되면 한 개인이 아니라 국가와 민족을 불행에 빠뜨리게 됩니다. 가까운 예로써 일본의 근대사를 들 수가 있습니다. 제국주의 열강의 무력에 의해 강제로 개국을 당한 이후에 메이지 시대를 거치면서 일본은 여러 차례 큰 전쟁을 했고, 그 결과로 일본도 제국주의의 막차를 타게 되었는데요, 청일전쟁, 러일전쟁을 거치면서 조선을 합병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조선의 합병은 우리로서는 통분할 일이지만 일본의 입장에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외길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조선의 확보가 없이는 일본의 존속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그들로서는 불가피한 시대적 운명과 같은 진행이었습니다. 이것은 만주사변까지는 일본의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제국주의의 광풍이 전 지구적으로 몰아치던 당시에 여기까지의 일본의 범죄적인 침략이라거나 능력의 한계를 벗어난 야욕의 발로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만약에 일본의 지도자들이 조선의 지배와 만주의 경영이라는 선에서 만족할 줄 알고 거기서 그칠 줄 알았더라면 아마도 일본은 만주와 한반도, 일본 열도를 합친 대제국으로 지금까지 세계사에 예를 찾기 힘든 대제국을 건설하고 번영을 누렸을 것이 틀림없다고 저는 봅니다. 명치유신 이후에 일본 민족이 보여준 경탄할만한 노력과 단결, 희생의 결실이 한만일 삼국이 통합된 대제국의 건설이라는 화려한 막을 열었을 것이라고 저는 봅니다. 그러나 일본군 내의 그릇된 리더쉽이 중일전쟁을 일으킴으로서 그 모든 것이 허사로 변했습니다. 중일전쟁이야말로 당시 일본으로서는 백해무익한 과욕이요, 아무런 명분 없는 침략이었습니다.
일본이 진주만을 기습하면서 대미개전을 하게 된 이유도 바로 중국과의 전쟁이 끝도 없이 계속되었기 때문입니다. 중국침략 때문에 미국은 일본에 대해 석유금수 조치를 하게 되고 일본은 중국에서 철병할 것인가 미국과 전쟁을 할 것인가의 양자택일을 강요당합니다. 결국 일본은 미국과 전쟁에 돌입하게 되는데 그것은 패망이 약속된 길이었습니다. 당시 일본군의 리더를 자부했던 젊은 장교들의 그릇된 리더쉽이 결국 조국을 잿더미로 만들고 전범국가의 오명을 뒤집어쓰게 만들고 말았던 것입니다. 만약 일본이 한반도와 만주에 대한 동화정책을 효과적으로 지속하고 조선과 만주의 경영에 노력하면서 유럽에서 일어난 전쟁에서 1차 대전 때와 마찬가지로 영일동맹의 틀 속에서 영국과 프랑스, 네델란드 등을 지원했다면 2차 대전의 승리는 일본에게 세계의 지도국가로서 부동의 위치를 점하게 했을 것이고, 조선의 독립 같은 것은 하룻밤 꿈처럼 사라지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것이 일본이 가야 했던 길이고 일본의 리더쉽이 보여줘야 했던 결단과 용기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소화시대 일본의 리더쉽은 언제나 최악이었습니다.
그리고 노자는 또 말합니다. 천하에 도가 있다면 달리는 말이 똥이나 싸면서 놀게 된다고 말입니다. 만약 우리나라에 도가 있다면, 올바른 정치와 리더쉽이 이 나라를 이끌고 있다면 우리 해군의 자랑스러운 전투함들이 항구 안에 묶인 채 빈둥거리게 되겠지요. 이순신, 강감찬함이나 몇 년 후에 우리 해군의 자랑이 될 한국형 이지스함들이 닻을 내린 채 쉬게 될 겁니다. 그러나 리더쉽이 흔들리고, 국방과 안보를 업수이 여기고, 누가 적인가를 혼동하게 되면 김정일의 유도탄이 서울 한복판에 떨어지는 꼴을 보게 되겠지요. 우리 해군의 함정들이 상처를 입고 피투성이가 되어 돌아오게 될 겁니다. 그것을 노자는 너무나 절묘한 시적인 표현으로 융마생어교라 했습니다. 오랑캐말이 우리 성문 밖에서 태어난다고 말입니다.
노자는 리더쉽의 최고의 덕목으로 “지족(知足)”과 “지지(知止)”를 들고 있습니다. 족함을 모르고 그칠 줄 모르는 리더쉽은 위험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리더쉽은 나라와 민족을 가지고 모험을 하려고 듭니다. 작금의 조국의 현실은 어떠합니까? 우리 지도자들의 리더쉽은 어떤 것입니까? 하지 않아도 좋은, 해서는 안 되는 실험을 끝없이 하고 있습니다. 그쳐야 하는데도 그치지 않고 밀고 나가는 오기와 독선의 리더쉽이 우리 민족을 지도하고 있습니다. 노자의 가르침이 더욱 절실한 때입니다.
노자의 리더쉽은 “지지(知止)”와 “지족(知足)”이라는 덕목을 숭상하는 리더쉽입니다. 그렇다면 노자의 용병관은 어떤 것일까요? 도덕경 제69장에 “용병(用兵)”이라는 장이 있습니다. 내용을 한 번 보죠.
“용병유언(用兵有言) 오불감위주이위객(吾不敢爲主以爲客)”. “용병유언”이라 함은 “용병에 관하여 이런 말이 있다”는 소립니다. 노자 당대의 병법에 이런 말이 있었나 봅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오불감위주(吾不敢爲主)”... 나는 감히 주인이 되려고 하지 않는다. “이위객(以爲客)” 오히려 손님이 되려고 한다. 이런 말입니다. 노자 당대의 병법 격언은 오늘날의 군사원칙과는 상당히 달라 보입니다. 여러분들이 배운 전쟁의 원칙이 여러 가지가 있을텐데요, 그중에서 가장 핵심적인 전쟁의 원칙이라고 하면 그건 주도권의 원칙입니다. 군략의 요체는 바로 주도권을 내가 갖기 위한 모든 노력과 방책입니다. 주도권이라는 것은 싸움을 유리하게 이끌고 승리하기 위한 제반 조건을 만들어내는 힘인 것이지요. 쉽게 말하면, 내가 싸우고 싶은 장소에서, 내가 싸우고 싶은 때에, 내가 싸우고 싶은 방식으로 싸우는 것을 결정할 수 있는 권리가 바로 주도권입니다. 이건 바로 주인의 권리입니다. 손님은 주인이 권하는 자리에 앉아야 하고, 주인이 내오는 음식을 먹어야 하고, 주인이 원하는 바 예의를 갖추어야 합니다. 그것이 손님의 도리입니다. 그런데 노자는 용병을 말하면서 “주인이 되지 말고 객이 되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바로 주도권을 포기하라, 주도권을 쥐려고 하지 말라는 소리나 마찬가집니다. 그러면서 뭐라고 합니까? “불감위촌이퇴척(不敢爲寸以退尺)”... “촌(寸)”은 손가락 마디 하나의 길이인데 우리말로는 “치”라고 합니다. 척은 우리 말로 한 자입니다. 그러니까 감히 한 치를 나아가려 하지 않고 오히려 한 자를 물러난다는 소립니다. “是爲行無行(시위행무행)”... 이를 일러 하지 않고도 하며, “양무비(攘無臂)” 팔이 없어도 물리치고, “집무명(執無兵)”... 군대가 없이 지켜내며, “잉무적(扔無敵)”... 적이 없게 만든다 이런 말이 되겠네요.
얼핏 들어보면 현실과는 거리가 동떨어진 이상론인 것 같지만 노자의 말씀은 그런 차원을 넘어서는 경지에 가 있습니다. 모택동은 동양의 고전을 두루 섭렵하고 한학에 상당한 조예가 있었던 사람입니다. 모택동의 유격전술은 모택동이 노자의 용병사상에 정통했던 결과 만들어진 것이었습니다. 모의 유격전술은 철저하게 주도권을 상대에게 주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적진아퇴(敵進我退)” 적이 진격하면 우리는 물러난다. “적퇴아진(敵退我進)” 적이 물러나면 우리는 추격한다. “적주아요(敵駐我擾)” 적이 주둔하면 우리는 소란을 일으킨다. “적피아타(敵疲我打)” 적이 피로하면 우리는 공격한다고 하는 소위 모택동의 16자 전법은 주인의 자리를 적에게 양보하고 자기는 철저하게 손님의 위치를 지키는 것입니다. 공수와 진퇴를 주인인 상대에게 맡겨놓습니다. 이것은 중국의 대표적인 무술인 태극권의 원리와도 일치합니다. 태극권은 상대의 움직임을 이용하고, 상대의 힘으로 상대를 쓰러뜨립니다. 유격전과 태극권의 묘리가 다 노자의 용병사상에 맥이 닿아있는 것이지요.
세계의 전사를 되짚어보면 의외로 상식적인 전쟁의 원칙에 위배되는 승리가 허다하게 많음을 알 수 있습니다. 좀 더 분명하게 표현하면 전쟁의 원칙에 위배된 승리가 아니라 전쟁의 원칙을 초월한 승리라는 말이 맞습니다. 바둑에도 그런 말이 있지요. 정석은 외우고 나면 잊어라. 전쟁의 원칙, 리더쉽의 원칙도 진정한 정수는 그것을 초월하는 경지에서 나옵니다. 주도권의 원칙도 그것을 초월할 때 극한의 주도권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한니발이 로마를 침공해 왔을 때, 바로가 지휘하는 로마군이 칸네에서 한니발의 카르타고군에게 섬멸을 당합니다. 이 칸네 전투는 아마도 여러분들이 전부다 알고 있는 전사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로마는 칸네 직전에 트라시메네에서도 먼저 패배를 겪은 바가 있었지요. 트라시메네호의 전투에서 수만 명을 병사를 잃고 로마가 패배했을 때, 로마의 집정관은 퀸티우스 파비우스라는 사람이었습니다. 파비우스는 한니발에 대한 승부를 회피하면서 지연전술을 구사했습니다. 지금도 지연작전을 파비안 전술이라고 하지요. 이 파비우스의 지연전이 20세기의 모택동의 유격전과 같은 원리에 기초한 것이었고 노자의 용병사상과 맥을 같이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파비우스의 지연전에 한니발은 크게 골탕을 먹지만 집정관이 파울루스와 바로의 2명으로 바뀌면서 로마는 결전으로 정책을 바꿉니다. 그 결과가 칸네의 패전이었고 칸네에서 로마군 6만 명이 몰살을 당합니다. 칸네에서 대승을 거둔 카르타고군은 로마를 공격하지 않고 바로 이태리 남부로 남하해서 로마와 여러 도시들 간의 동맹을 분쇄하는데 몰두하게 됩니다. 이때 위기의 로마를 이끈 리더쉽이 다시 집정관이 된 퀸티우스 파비우스입니다. 파비우스는 한니발이 이태리 남부를 마음대로 휘저으면서 분탕질을 하는 것을 그대로 내버려두었지요. 한니발에게 이태리반도의 주인이 되게끔 양보를 한 것입니다. 근 10년 동안 남부 이태리의 주인은 한니발이었고 로마는 노자가 말하는 손님이었습니다. 그러나 한니발의 주인 노릇은 결국 자마의 패배로 끝장이 납니다. 한 치를 넘보기보다 한 자를 물러난다는 리더쉽이 바로 파비우스의 리더쉽이었고, 그것이 건국 이래 최대의 위기였던 포에니 전쟁에서 로마를 구해냅니다. 한니발이 침공해왔던 로마처럼 훗날 러시아는 나폴레옹의 침공에 절대절명의 위기에 빠집니다. 이때 백척간두에 선 러시아를 구원할 책임을 떠맡은 사람이 바로 꾸두조프였습니다. 러시아군 총사령관 꾸두조프의 별명은 잠꾸러기영감이었습니다. 작전회의를 하면 늘 구석에서 졸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용장, 맹장, 지장의 이미지하고는 좀 거리가 있어 보이는 타입이었습니다. 그러나 나폴레옹의 그랑드 아르메 45만명이 러시아 국경을 넘었을 때, 상승의 프랑스군은 처음으로 이 잠탱이영감의 러시아군에게 패배를 맛보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유명한 보르디노전투입니다.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에 이 전투의 참상이 적나라하게 묘사되어 있지요. 러시아군은 이 전투에서 지지 않았지만 꾸두조프는 퇴각을 명령합니다. 그리고 러시아는 수도 모스크바를 나폴레옹에게 넘겨주고 철수하지요. 꾸두조프는 나폴레옹에게 러시아의 주인자리를 내주고 손님으로 물러났습니다. 나폴레옹은 텅 빈 모스크바에서 잠시 동안 러시아 대륙의 주인행세를 하지만 45만 그랑드아르메 중 살아서 프랑스로 돌아간 사람 수는 고작 4만 명에 지나지 않습니다. 만약에 꾸두조프가 끝까지 주도권을 지키려고 해서 러시아의 주인 자리를 고집했다면 보르디노 들판에서 러시아는 끝장이 났을 겁니다. 그러나 꾸두조프는 울면서 보르디노에서 철수했고 모스크바를 버리면서 러시아의 군대를 보존했습니다. 러시아는 잠꾸러기 영감의 스스로 객이 되는 리더쉽에 의해 구원을 받게 된 것입니다.
이순신 장군의 용병도 주인이 되어야 할 때와 객이 되어야 하는 때를 구분하는 리더쉽이었습니다. 객이어야 할 때 주인이 되려고 했다가 당시 세계 최대의 함대였던 조선수군을 한 순간에 상실한 사람이 바로 원균입니다. 이순신 장군은 객이어야 할 때 주인노릇을 하라는 권율의 지시에 응하지 않음으로서 곤장을 맞고 삭탈관직을 당했습니다. 당시 부산포 일대는 왜군의 철옹성이었습니다. 부산포 일대의 모든 해안에는 왜군이 진지를 구축했고 왜 함대는 견고한 육상기지의 화력과 해상구조물로 방어되고 있었기 때문에 부산포 일대의 바다는 왜군이 주인이었습니다. 당시의 군선들은 배에 식량과 물, 그리고 취사시설과 숙박시설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언제나 육지가 바라다 보이는 해안선을 따라 움직였습니다. 돛의 바람이나 노를 저어 가다가 적당한 해안에 배를 대고는 뭍에 상륙해서 식사도 하고 용변도 보고 야영도 했습니다. 그래서 안심하고 배를 댈 육지가 없으면 함대는 더 이상 진출하지 못했습니다. 주변의 모든 육지가 왜군의 진지요 주둔지인 부산포 일대는 조선수군이 주인행세를 할 수 없는 사지였는데, 수륙병진이 아닌 수군만의 단독공격을 주장한 조정의 명령은 조선수군에게는 사약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조정의 명령대로 부산포를 공격하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었지요. 그래서 부산포 일대에 관한 한 이순신 장군은 손님의 자세로 일관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바다싸움에는 무식했던 권율은 기어코 삼도수군통제사를 갈아치우면서 원균에게 부산진공을 명령합니다. 그 결과가 칠천량해전의 참담한 패전이었습니다. 바로 칸네의 패전입니다. 칸네의 패배 후에 파비우스의 리더쉽이 로마를 구했듯이 이순신 장군의 리더쉽이 칠천량 패전 후의 조선을 구하게 됩니다. 원균이 삼도수군통제사를 맡게 되기 직전의 남해 바다는 노자가 말한 “잉무적(扔無敵)”을 완벽하게 실현해 놓은 상태였습니다. “잉(扔)”은 당길 잉자입니다. 무엇을 당기느냐. “무적(無敵)”, 적을 끌어당기는 것이 아니라 무적을 끌어다 놓는다는 것입니다. 즉 적이 없는 상태를 만든다는 이야깁니다. 이순신 장군은 비록 부산포 일대의 바다는 왜적들이 활개를 치도록 내버려두었지만 이 전쟁에서 조선의 명운이 걸린 서남해의 바다에는 왜선이 단 한척도 얼씬거리지 못하게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노자가 말하는 잉무적입니다. 적을 끌어당겨서 격파하는 것이 아니라 적이 없는 상태를 만드는 것이 상승의 병법인 것입니다. 서남해를 왜선이 침범하지 못하는 한 조선은 안전한 것입니다. 수륙병진이 불가능하면 왜군은 언젠가는 물러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조선 조정과 권율의 리더쉽은 지지하고 지족하여 집무병, 잉무적하는 리더쉽이 아니라 부지족하고 부지지한 리더쉽이었습니다. 조선의 생명선인 서남해에 적이 없는 상태에 만족하지 못하고 부산포의 왜수군마저 쓸어내버리려는 과욕을 부립니다. 그 결과는 무엇이었습니까? 500척이 넘는 왜의 대선단이 남해를 호호탕탕 서진해서 서해바다의 입구를 넘보는 꼴을 보게 되고 말았습니다. 잉무적이 잉적이 된 것이지요. 기어코 잉적했을 때 그 적은 감당키 어려운 적이었습니다. 칸네에서 로마군의 시체를 밟고 넘어 로마로 쇄도한 한니발군에 로마가 속수무책이었던 것처럼 칠천량 패전 후에 정유재란의 왜군은 조선으로서는 역부족인 상대였습니다. 로마가 스키피오라는 불세출의 명장을 얻기까지 칸네의 패전 후에 10년이라는 세월이 필요했습니다. 이 기간 동안 로마를 멸망으로부터 지켜내면서 시간을 번 사람이 집정관 파비우스입니다. 그 인고의 세월 끝에 스키피오가 등장해서 아프리카의 자마에서 한니발군을 무찌르고 역사에 찬란한 승리를 거둡니다. 그러나 당시의 조선에는 파비우스가 없었고, 10년씩이나 기다릴 시간도 없었습니다. 조선이 가졌던 것은 고작 열두척의 군선과 이순신의 리더쉽 뿐이었습니다.
노자는 이 장에서 이어서 말합니다. “화막대어경적(禍莫大於輕敵)”이요, “경적기상오보(輕敵幾喪吾寶)”니라. 적을 가벼이 여기는 것보다 더 큰 화는 없고, 적을 업수이 여기는 것은 나의 소중한 보물들이 다치고 상할 징조이니라. 그러므로, “항병상가(抗兵相加)”, 군대를 서로 맞붙게 할 때는, “애자승의(哀者勝矣)”니라. 슬퍼하는 자가 이기느니라. 이런 말입니다.
칠천량에서 세계최강의 함대였던 조선수군을 몰살시킨 왜수군은 그들의 숙원이었던 수륙병진이 가능해졌습니다. 히데요시가 일본 전국을 닦달하여 끌어모은 군선이 500척이 넘었습니다. 조선의 판옥선과 귀갑선에 대적할 수 있을 정도로 군선을 크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왜수군은 열두척의 조선수군을 우습게 봤다가 명랑에서 참패를 당합니다. 노자의 말씀 그대로 막대한 화를 입게 된 것입니다. 적을 경시하다가 수많은 자기 군졸들을 상하고 다치게 했습니다. 졌을 때 비굴하고 이기면 교만해지는 것이 왜인들의 국민성이지요. 왜인들은 원래 지면 “마잇따!”하고 납작 엎드립니다. 자기를 패배시킨 적에 대해 한없는 존경과 복종심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그대로 드러냅니다. 그런데 이기기만 하면 교만해지고 포악해집니다. 일본의 항공모함 부대가 진주만을 기습해서 미국의 태평양 함대를 일시에 때려부순 것은 마치 칠천량에서 원균의 조선수군을 하룻밤에 장사지낸 것과 비교할 수 있습니다. 그때 왜수군이 교만에 빠져 열두척의 조선 수군을 깔 본 것처럼, 진주만 기습이 성공한 후에 일본해군은 두세척의 항공모함밖에 남지 않은 미해군을 업수이 여깁니다. 그러다가 명랑에서 이순신 장군한테 박살이 난 것처럼, 미드웨이해전에서 결정타를 맞게 됩니다. 이게 바로 노자가 말하는 상승의 리더쉽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상대를 주인으로 대접하면 나는 손님이기 때문에 주인에 대해 조심스럽게 됩니다. 주인을 어렵게 대합니다. 용병을 이와 같이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상대를 초상집에 찾아온 꺼러지처럼 대하면 명랑과 미드웨이의 일본군처럼 반드시 쪽박을 차게 됩니다. 설사 꺼러지같은 행색을 한 상대라도 주인처럼 대해야 용병에 실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노자가 용병에 이런 말이 있다면서 “나는 감히 주인이 되지 않고 객이 되려고 한다”는 말의 뜻을 이해하실 수 있겠습니까? 저는 이 나라 해군의 지휘관들이 적을 대하기를 주인에게 하듯이 하기를 바랍니다. 전쟁을 슬퍼하는 장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반드시 싸우면 이기는 그런 해군을 우리 조국이 갖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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