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22 땅끝
어제 마지막 배로 보길도에서 나와
어둑한 땅끝전망대에 올랐을때는 보름달이 아주 볼만 했었었다.
이른아침...
땅끝의 일출을 보겠다고 서둘러 전망대를 오르는데
하늘이 탁하다.
해가 구름 사이를 헤집고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라도 하듯
모습을 드러내 보일때는 이미 중천이다.
그도 잠시 이내 구름속으로 자취를 감춘다.
하늘도 어둡고 바람이 날아갈듯 센것이
여행하기에는 별로다 날씨가...
땅끝탑.
땅끝.
제철? 만난 전복.
이곳 땅끝 전복집에서 1kg의 전복을 사는데 포장이 아주 성의가 있게 해준다. 스치로폴 박스 맨아래에 아이스팩을 넣고 다음에 톳을 꽤
많이 얹어 깔고 전복을 고르게 담아 테이프로 밀봉을 한다음 보자기로 싸서 주는데 꼭 선물 포장 같다. 맛보시라고 한마리씩 썰어주는데
역시나 맛있다. 살이 단단하고 양도 제법 많다. 어제도 보길도에서 사왔던 1kg을 저녁 식사로 맛나게 즐기고 아침에도 전복죽이었는데 이
번 여행에서는 전복 포식을 한다.
맛을 보라며 두마리나 썰어주는 손큰 여사장 김연아님. 앞으로 전복 먹고싶으면 전화 한통화면 될듯...
이정도의 전복은 1kg에 6마리정도 되는 크기인데 가격은 65,000원이다. 쉬운 계산으로 마리당 만원이고 포장비가 오천원이다. 조금 비
싸다고 생각되어질수도 있는데 포항에서의 가격보다 반값 정도라고 생각하면 된다. 제품의 질은 비교 자체가 쪼매 무리다.
땅끝 여행중의 또다른 관광 명소
해양사 박물관.
생각외로 상당한 시간을 바닷속 유영에 할애 하게 된다.
땅끝 해양사 박물관.
땅끝 전망대에서 남서쪽으로 4km떨어진 통호분교(폐교) 부지에 들어선 이 박물관은 완도 출신의 임양수씨 사설박물관으로 해양 자연생
태계의 신비를 체험할수 있으며 자연환경의 조화로움과 바다 생태계의 경이로움을 접할수 있는 곳이다.
갑각류와 화석 300여점.산호류 50여종 1천여점. 패류 1200여종 2만점. 어류 500여종 700여점. 곤충류.파충류등 1000여점이 박제 전시되고있다. 3천여평의 전시관이 좁아 소장품의 1/3 정도밖에 전시할수 없어 자주 전시품을 교체 하고 있다고 한다.
화석.
거북복어.
고래상어.
임관장이 가장 아끼는 전시물중 하나인 길이가 7m 80cm나 되는 고래상어는 크기에 비해 온순해 주식이 멸치등 소형 어류라고 한다.
가시복어.
날치.
뿔복어.
악어고기(가아피쉬)
아마존강에서 서식하는 희귀어종이자 고대어라고 한다.
산호.
원래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채 전시되어있는 고동과 조개가 마치 보석같다.
사랑조개.
독수리.
박물관 마당 한켠에 반달곰도 두마리 있다.
흰진달래.
조각공원.
어제 오전 올랐었던 달마산. 지나면서의 조망도 상당히 좋은산이다.
두륜산 위봉.
운무에 가려져 있는 두륜산.
대흥사 인근의 한 식당인데 오천원짜리 보리밥 식단이 이렇게 푸짐하다.
8개월 되었다는 아기인데 밥을 곧잘 받아 먹는다. 낯도 안가라고 생긋생긋 이쁜짓을 한다.
해탈문.
흰 코끼리를 타고있는 보현동자.
청사자를 타고있는 문수동자.
대흥사 천불전(시도 유형 문화재 제48호)
대흥사 천불전은 순조 11년(1811)에 불에 탄 뒤 2년 뒤에 다시 지어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앞면 3칸·옆면 3칸 규모이며,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다.
내부의 중앙에는 목조 본존불이 모셔져 있으며, 6년의 기간에 걸쳐 만들어진 천 개의 불상이 배열되어 있다.
침계루.
대흥사 대웅보전.
해남 두륜산(頭輪山)의 절경을 배경으로 자리한 이곳 대흥사는 임진왜란 이후 서산(西山)대사의 의발(衣鉢)이 전해 지면서 조선불교의 중심 되었으며 잘 알려진 서산대사의 구국 정신은 개인의 수행에 앞서 국가의 안위를 보다 우선시 했던 한국불교의 전통을 대표하는 전각 표충사(表忠祀)가 자리하고 있는 호국불교(護國佛敎)의 정신이 살아 숨쉬고 있는 도량이다.
탑산사 동종.
표충사.
정조 12년(1788) 천묵 스님이 휴정 스님(서산대사)과 유정, 처영 세 스님의 영정을 모시려고 조정에 상소하자 정조가 세 스님의 충을 기
려 ‘표충사(表忠寺)’라 사액한 사당이다. 표충사가 대흥사에 세워지게 된 것은 휴정 스님이 입적하기 전 “삼재가 들지 않는 곳이요, 만세
토록 파괴됨이 없는 곳이며, 종통의 소귀처”라며 대흥사에 자신의 가사와 발우를 둘 것을 당부했기 때문이다.
구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두륜산이지만 그래도 오르려는데...
잘도 참아주고 있던 날씨가
비를 몰고 내려온다.
북암으로 향하던 발길을
어쩔수 없이 돌린다.
순천으로 되돌아 나오다가
보성 쇠실마을로 찾아든다.
조선시대부터 우측 산 어귀에 쇠를 부리는 곳(일명:대장간)이 있어
이곳을 쇠곶이라 하여 쇠실(금곡)이라 하였다는 쇠실마을.
쇠자만 뜨이면 그저 궁금혀서리
누가 대장간 대장장이 아니랄까봐...
그란디 이곳 마을에는 대장간이 아닌
최근에 개관된 백범 김구선생 은거 기념관이 있다.
백범 김구 은거 기념관 .
백범 김구 은거의 집.
1898년 5월경 김두호라는 건장한 청년이 이집에서 달포(45일)쯤 기거 했는데 그청년이 나중에 온겨레가 민족의 지도자로 숭앙하는 백범
김구 선생이었다. 백범 선생은 인제의 민비 시해를 응징코자 일본군 장교를 살해하고 옥고를 치르다가 1898년 3월 9일 인천감옥에서 탈출
하여 피신처를 찾던중 그해 5월 쇠실마을을 찾아든 것이다. 백범 선생은 이집에 머물면서 종친 광언.덕언.사중과 더불어 학문과 시대를
논하고 우리 역사를 공부하며 민족정기를 일깨웠다. 떠날때 그간 보살펴준 은덕에 감사하며 이집의 종친 김광언에게 한국 역사책을 남겼
는데 이책의 표지속에는 이별을 아쉬워 하는 한시 한수와 김두호라는 서명이 있다.
이별하기 어렵구나 이별하기 어렵구나.
헤어지는 곳에서 일가의 정이 솟는다.
꽃 한가지를 반을 나누어
한가지는 종가에 남겨두고 떠나네
이세상 살아 언제 만날것인고
이강산을 떠나기 또한 어렵구나.
넷이 함께 놀기 한달이 넘었는데
일이 어긋나 아쉽게 헤어지며 떠나는구나.
해방후 상해에서 귀국하자 김구선생은 김기옥(김광언의 손자)에게 안부를 묻고 한번 방문하겠다는 편지를 보낸다. 그리고 이마을을 떠
난지 48년이 지난 1946년 9월 김구선생은 민족 지도자가 되어 쇠실마을을 다시 찾았다.
김구 선생이 이집에 머문 기간은 45일 정도다. 선생의 파란 만장한 인생을 생각하면 매우 짧은 기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방후 짧
은 인연을 잊지 않고 편지를 보내고 또 직접 마을을 방문해 마을 사람들과 정담을 나느는 시간을 갖는다. �은 인연을 소중하게 여기고 작
은 은혜에 진심으로 감사하는 김구선생의 모습이 너무나 고귀하게 느껴진다.
백범 김구 은거 당시의 방과 다시 찾았을때의 모습을 생생히 기억하고 계신 노모(김광언 며느님)
보성 충절사.
충절사. 이곳은 임진(壬辰).정유(丁酉)란때 의병을 일으켜 국난을 극복한 모의장군(募義將軍) 최대성공(崔大晟公)을 모신 사당이다. |
1752년 (영조28년)전국 사림들의 상서로 통정대부형 조참의에 추증되고 경주최씨 일문의 애국충절을 기리기 위해 정충문도 건립되었
다.일제의 침략으로 유물과 유적이 거의 소멸되었으나 장군의 우국충정을 후세에 전하고자 1992년 유적복원사업을 추진하여 1995년에
완공을 보게되었다.
순천 검단산성.
비가 부슬부슬 나리고 흙거미가 깔리기 시작하는 가파른 길을 급하게 오른다.
오래된 토성이라서인가?
성이 성같지가 않다.
이 지역에서 처음 확인된 백제 때 산성으로 매우 중요하며, 특히 성곽 안의 큰 우물에서 나무로 만든 그릇류와 가구가 확인되어 백제시
대 산성과 생활상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순천시 검단산 정상부에 있는 산봉우리를 둘러싼 테뫼식 산성으로 광양만이 훤히 보이는 요새이다.
성벽은 430m이고, 성문이 있던 자리 3곳, 건물이 있었던 자리 3곳, 큰 우물터 1곳, 저장구덩이 2곳이 조사되었다. 또한 기와류, 흙으로
만든 그릇, 나무로 만든 그릇, 돌로 만든 그릇 등 다양한 유물들이 발견되었다.
정유재란 때 조선과 명나라의 연합군이 신성리의 왜교성에 머물고 있던 왜군과 팽팽하게 맞서면서 쌓은 산성으로, 조선시대의 것으로
알려져 왔었으나 조사결과 백제 때 쌓은 것으로 확인되었다고 한다.
섬진강 휴게소의 야경.
비만 안오면 구례나 하동으로 향했어야 하는걸음인데...
섬진강 휴게소 철망넘어 섬진강 재첩국집의 육천냥짜리의 재첩 덮밥. 예전의 생각만으로 철망 개구멍을 찾는데 철두철미하게 막아놓았
다. 그래서인가 전에는 꽤 여러집이 성황을 이루었었는데 근근히 두집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그나마도 전같이 잘되지는 않는것 같다.
하지만 식단은 예전이나 다름없이 푸짐하다. 재첩국까지 나오는데 휴게소와는 비교도 안된다.
오늘 식단들은 넘 푸짐하다.
배를 두두리며 빗길을 내쳐 달려 경포 산업도로 산만등이에 올라서니
몇일만에 바라보이는 포스코의 야경이 반갑다.
땅끝집에서 사온 전복.
귀가해서도 전복회에다 보성 딸기다.
<인터넷 자료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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