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29 청도 나들이
소싸움 구경 갔다가 그냥 돌아서고 만다.
그것도 거의 다 도착 되어서다.
진행요원들의 안내에 따라 주차를 시켜놓고
도로를 따라 걷기 시작하는것까지는 좋았었다.
얼마를 걸었을까?
또다른 진행 요원이 있어 거리를 물어보니
약 1km정도 더 가야 된다고 한다.
그런데
왼쪽 도로 공사중인 임시 주차장 사이로 차량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행사장 방면으로 진입을 하는것을 보니 걸음이 맥이 풀린다.
누구는 주차를 하게 하고는 또 누구는 진입을 계속하게 하고
뭐 이런 경우가 있는가 싶어 궁시렁 거리며 걷고 있으니
소싸움 구경 하고 싶다던 옆지기 듣기가 거북했는지 멀찌기 뒤처져 따라 걷는다.
아무래도 되돌아가 차를 가져오는게 맞지 싶어 기다리라 해놓고
돌아 서는데 소싸움 구경 하지 말자고 한다.
주차요원들의 성의 없는 진행에 그렇찮아도
이미 소싸움이고 청도고 점점 정나미 떨어져 가고 있는데 잘됐다 싶어 그러자고 한다.
미련 없이 돌아서서 고속도로를 이용 대구로 달린다.
대구 국립박물관을 둘러보는데
옆지기 표정이 별로다.
소싸움 구경 말자던 말이 참이 아니었었나?
대비사 대웅전.
청도 박곡동 석조 석가여래 좌상(보물 제203호)
처진 소나무(천연기념물 제295호)
청도 불령사 모전석탑(문화재 자료 제294호)
청도 불령사.
장연사지 삼층석탑(보물 제 677호)
청도군 매전면 장연리
금동제사리탑(보물 제325-1호)
이와 같은 기단 윗면 중앙에는 6각의 연판을 원형으로 깔고 유리배를 받치게 되어 있다. 네 모서리에는 기둥을 세웠고 이 위의 보개는 2단으로 모두 투각 장식판과 이에 부착된 긴 연화판이 밖으로 비스듬히 달렸고 처마 밑으로 3각형 수식(垂飾)이 14개씩 늘어졌으며 보개 4 귀는 기단에 이르는 영락(瓔珞)이 달린 긴 수식이 달려 있다.
이 모든 부재(部材)는 얇은 금판(金板)을 사용하였고 그것을 오려내고 점선(點線)을 찍는 등 가공을 하였으며 하나하나 부재를 못으로 고정하였다. 높이는 14.2㎝이다.
금동보살 입상(국보 제183호)
금동보살입상(국보 제184호)
경상북도 선산군 고아면에서 공사를 하던 중 금동여래입상(국보 제182호), 금동보살입상(국보 제183호)과 함께 출토되었다. 이 지역에서 삼국시대의 기와조각과 토기조각들이 많이 출토되어서 원래 절터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정면을 향해 꼿꼿이 선 보살상은 머리에 꽃으로 장식된 관(冠)을 쓰고 있으며, 관의 가운데에는 둥근 테두리 안에 작은 부처가 새겨져 있다. 약간 길고 네모진 얼굴은 엄숙한 표정을 띠며, 어깨는 넓은 편이어서 근엄하고 딱딱한 느낌을 준다. 길고 굵은 목에는 복잡한 구슬 장식의 목걸이가 걸려 있고, 어깨로부터 늘어진 목걸이는 배부분에서 X자를 그리며 교차한다. 또 목걸이 장식의 연결부분마다 또다른 구슬을 걸쳐 매우 번잡하게 나타냈는데, 신라시대 보살상으로는 드물게 많은 장신구를 지니고 있어 주목된다. 오른손은 내려서 구슬장식을 가볍게 잡고 있으며, 왼손은 윗부분이 떨어져 나갔으나 정병(淨甁)과 연꽃가지를 들고 있었던 것 같다.
현재 광배(光背)와 대좌(臺座)는 없어진 상태인데, 머리 뒤에는 광배 꼭지가 남아 있으며 발 아래에는 대좌에 꽂기 위한 기둥모양의 촉(觸)이 높게 달려 있다.
<인터넷 자료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