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天神役事의 時代
한번 생겼다 없어지는데 천억 년이 걸리는 우주가 억만 번을
생겼다 없어지는 세월을 무량수(無量數)라 하고 또는 억겁(億劫)이라 한다. 한 겁(劫)의 세월은 집채만한 바위를 백년에 한번씩 천상의 선녀가
내려와 잠자리 날개보다 더 부드러운 옷깃으로 한번씩 쓸어 마침내 닳아 모래알로 변할 때까지 걸리는 시간이니 억겁의 세월은 실로 인간이 헤아릴 수
없는 시간이라 할 것이다.
광대무변한 우주의 시작과 끝도 억겁의 세월 속에서는 찰나와도 같아서 생겼다 없어지기를 셀 수 없이
하였다. 그래서 옛 선인은 "하늘은 시작됨이 없이 시작된 것이며, 끝남이 없이 끝나는 것"이라 가르쳤고(一始無始一, 一終無終一), 불타 역시
갈파하여 말하되 "본래 생기지 아니하였으니 멸할 것이 없고 태어나지 않았으니 죽을 것도 없다(不生不滅)"하였다.
세계는 본시
불생불멸하고 상주불변하는 것이라 시작이나 끝이나 시작과 끝의 사이나 그 본이 다르지 아니하여 이름을 붙일 수 없어 무(無)라 하고 허(虛)라
하지만 무에서 하나가 생겨 세계를 이루게 되니 일(一)을 가르켜 무극(無極)이라 하고 일에서 둘이 나오니 이를 음과 양이라 하고 이 둘이 하나로
돌아갈 때 태극이라 하니 일은 곧 이요 둘은 곧 하나라 이를 불이불일(不二不一)의 조화라 한다. 음양이 조화를 이룬 것이 삼이 되며 이 삼을
일러 중화(中和)라 하고 음중양 셋으로부터 만물이 생성되니 이를 사대(四大)라 한다. 사대는 곧 지수화풍(地水火風)이니 세계의 모습이다. 사대에
질서가 생기니 이를 오행(五行)이라 하고 오행은 목화토금수(木火土金水)의 상생상극(相生相克)하는 질서이다. 사대에 음양의 조화와 오행의 질서가
갖추어지니 비로소 세계가 온전하게 되었음이다. 그 온전함의 완성으로 나타난 것이 인간의 존재였다.
이를 옛 선인(仙人)이 남긴
천부경에 일러 "一積十拒無櫃化三(일적십거무궤화삼)"이라 하였다. 바로 하늘(一)의 기운이 겹겹히 쌓였는데 이것을 담을 마땅한 그릇이 없으니
인간으로 화하였다는 말이다. 만물에 충만한 기운은 대지에 생명의 싹을 틔우고 다시 억겁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하늘의 상서러운 기운이 모여 마침내
첫 인간이 되어 지상에 모습을 드러내게 되니 이 첫 인류가 살던 처음 땅을 일컬어 천계(天界)라 부른다. 천계는 간방(干方)으로 지구의
음(陽)의 극지(極地)라 능히 하늘의 정기가 모이고 쌓일 만 하였다. 그 곳이 바로 오늘날 바이칼이라 부르는 바다같이 너른 호수의
서쪽이었다.
모든 생명은 종의 한계 내에서 지속적인 진화를 계속하게 되지만
그러나 종의 점진적인 진화가 더 이상 종의 발전을 보장해 주지 못할 때 종의 벽을 뛰어넘는 도약으로서 생명은 전진을 계속해
나간다. 어류는 어류로서 진화하지만 결코 양서류로 넘어가질 못하고
양서류는 파충류로 가는 벽을 넘지 못한다. 진화의 증거인 화석에 중간형태의 생물이 나타나지 않는 이유가 그래서이다. 때문에 종이 그 자체적
진화의 한계에 다다랐을 때, 그 벽을 뛰어넘게 하는 천지자연의 대변화(大變化)가 있게 되는데, 이것을 우리는 '개벽(開闢)'이라 말한다. 이러한
개벽은 수억 년에 걸친 생명진화의 축적된 영적 에너지가 그 원인이 되어 대자연의 기운과 맞물려 일으키는 것이다.
최초의 인간이
땅위에 모습을 나타낼 때에도 천지에 개벽이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5만년 전, 당시에 지구라는 작은 혹성 위에는 원숭이보다는 조금 발달했지만
아직 인간일 수는 없는 유인원(類人猿)들이 곳곳에 살고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몸에는 털이 덮여있었고, 툭 튀어나온 턱과 부리부리한 눈에
손에는 돌도끼며 나무 몽둥이 같은걸 들고 뛰어 다니며 알아들을 수 없는 고함을 지르며 무리 지어 살고 있었다. 포유류가 그 진화의 마지막 단계에
들어선 모습이었다. 그들이 다시 한번 인간으로의 도약을 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대자연의 에너지가 필요했고 환경적인 대변혁(大變革)이 있어야만
했다. 생명의 진화란 대 드라마의 배경이 되는 '개벽'이 시작되었다. 그것을 현대에 사는 우리들은 "빙하기(氷河期)"라고 말한다. 약 5만년
전에 시작된 지구 최후의 "빙하기"에 수많은 유인원들-네안데르탈인이라고 불려지는 -이 다른 많은 동물들과 함께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사라져
갔다. 이것은 개벽을 통해 진화의 벽을 뛰어 넘기 위해서 생물계가 치르게 된 피할 수 없는 희생이었다. 온 지구가 얼음에 뒤덮이고 살인적인
혹한이 모든 땅을 얼어붙게 만들었고 빙하와 추위에 쫓겨 사슴과 순록과 말과 양들이 사라져 가는 초원을 따라 남으로, 남으로 이동해 갔으며,
이동속도가 느린 동물들은 추위와 굶주림 속에 죽어가야 했다. 북극으로부터 적도에 이르기까지 모든 대지에는 동물들의 시체가 깔리고 그 위를 백색의
눈이 두텁게 덮어 버렸다.
유인원들도 마찬가지 였다. 남쪽으로 떠나지 못한 무리들은 얼어죽거나 아니면 빙하 속에서 살아 남거나의 둘
중의 하나를 택해야만 했다. 이 가혹한 대자연의 시련 속에서 일단의 유인원들이 그 혹독한 환경과 싸워 살아남기 위해 수억만 년 동안 생명이
진화해 오면서 그 내면에 축적해 온 모든 생존능력과 잠재력을 총동원하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비로소 지혜의 불꽃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빙하에
갇힌 유인원들은 추위를 막기 위해 불을 보존하는 방법을 찾아내었고 어렵게 잡은 동물이나 각종 과실을 오랜 동안 보존하기 위하여 그릇을 만들거나
가축으로 사육하게 되었으며 열악한 환경은 그들에게 보다 많은 도구의 필요성을 심어 주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2만년의 빙하기가 끝나고
지구상의 곳곳에 찬란한 태양이 그 옛날의 따뜻한 햇살을 비추기 시작했을 때, 눈 속에 파묻혀 개벽의 시련을 견뎌낸 소수의 유인원들이 다시금
푸르러진 초원에 그 모습을 드러냈는데 이들은 2만년 전 개벽이 시작될 때의 그 유인원들과는 분명히 달라진 모습들이었다.
그들의
얼굴은 더욱 갸름해지고 다듬어진 것이 되었고, 훨씬 더 곧은 자세로 일어서서 걸어다녔으며, 빙하기의 생존을 통해 체득한 발달된 커뮤니케이션
수단을 갖고 있었다. 즉 말을 할 줄 아는 최초의 동물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들이 바로 인간이었고 이들의 모습이 천계(天界)에 나타났을 때
옥황상제께서도 크게 기뻐하셨고 천상의 모든 신들이 그들을 축복했다.
상계(上界)에서는 그들 중 가장 대표적인 두 남녀를 골라 "나반"과 "아만"이란 이름을 붙여 불렀다. 하지만 최초에 이
인간들은 지혜의 정도가 그 이전의 모든 동물들 보다 탁월한 정도에 이르긴 했지만 아직은 능력이 불완전하고 생명력도 위태로운 것이었다. 그래서
우주대자연의 궁극적 목적이랄 수 있는 완전한 지혜의 존재 - 신의 변환체로서의 생명이 될 소중한 싹- 를 보호하여 주기 위해서 천상에서는 진지한
회의가 열렸다. 하늘님이 직접 지상에 내려가서 이들을 교화하고 다스리는 것이 검토되기도 했지만 아직까지는 인간이 지혜의 문이 완전히 열려 있지
않고 이전의 동물이었던 단계의 야성(野性)과 우매(愚昧)함이 남아 있어 하늘의 교화(敎化)를 받아들일 수 없으리라고 여겨졌다. 결국 천상의
회의는 초기 단계의 인간을 보호할 네 마리의 신령한 동물을 대신 보내는 것으로 결정지어 졌는데 이 신령물들이 바로 우리 민족의 수호신(守護神)인
용(龍),봉(鳳),맥(貊),호(虎)의 4신수(四神獸)였다. 이들은 각각 천상의 일주기인 삼천년씩 지상에 내려와 자연적 재해(災害)와
질병(疾病), 수환(獸患)등으로부터 인간을 보호해주게 되었는데 이들 중 가장 먼저 지상에 내려온 것이 용(龍)이었다.
용은
풍운(風雲)을 다스려 여러 가지 자연적 재해와 위난으로부터 인간을 보호하는 사명을 다하였다. 2만년 전 지상에 내려와 3천년을 거하다가 이윽고
그 기한이 차매 상계(上界)로 돌아가는 날이 되자 비늘 하나를 인간들에게 떨어 뜨려주었는데 이것이 거울로 화했다. 이 용의 비늘이 변하여 거울이
된것을 "용경(龍鏡)"이라고 하는데 훗날 환인(桓因)이 이 용경의 뒷면에 "천부경(天符經)"을 새겨 커다란 가르침으로 삼게
되었다.
용이 돌아간 후, 다음 3천년 동안 인간을 수호할 신수(神獸)로 봉황(鳳凰)이 왔는데, 이 봉황은 항상 암수가 같이 다니는
신조(神鳥)였다. 봉황은 언제나 상서러운 서기로 인간을 둘러싸고 질병과 역질이 침범치 못하도록 하였다. 이 한 쌍의 신조는 수컷을
"봉(鳳)"이라 하고 암컷을 "황(凰)"이라 하는데 황이 천계로 돌아가는 날 깃털 하나를 남겼다. 황의 깃털은 양쪽으로 가지가 세 개씩 나 있는
형상인데, 이것이 그대로 칼로 변해 사람들이 "황검(凰劒)"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훗날 백제왕이 왜왕에게 하사한 칠지도(七枝刀)도 먼 옛날 환국
시대의 신표였던 이 황검의 형상을 본떠서 만든 것이었다.
그 다음에 온 것이 "맥(貊)"이었는데, 맥은 코끼리와 돼지를 합친 것처럼
못생긴 짐승이었지만 사람에게 해로운 독초와 독충을 샅샅이 잡아먹는 신통력을 가져서 해충과 독으로부터 인간을 구제하는 신물(神物)이었고 이 맥이
3천년을 다한 후 천계로 돌아갈 때 허물을 벗어서 가죽을 남겼다. 이때에 맥이 남긴 가죽으로 사람들이 큰 북을 만들었는데 이것을
"맥고(貊鼓)"라 한다. 훗날 신시개천 때 환웅(桓雄)이 환인에게 물려받는 천부인(天符印) 세개가 바로 이 "용경(거울)", "황검(칼)",
"맥고(북)"의 세가지 신물이었다.
마지막으로 지상에 내려온 신수가 바로 "백호(白虎)"였는데, 백호는 백수의 왕이며 산을 다스리는
산군(山君)으로서 백호가 거한 3천년 동안 어떤 맹수나 들짐승도 사람을 해하지 못하였다. 백호가 3천년을 거의 채워갈 무렵, 그러니까 최초의
인간인 나반과 아만이 생겨난 이래 1만2천 년이 흐를 즈음 인간은 그 수가 점점 불어났고 유치한 단계이긴 했지만 문명(文明)이란 것이 그
원시적인 형태를 드러내고 있었다. 천계 주위엔 여러 마을이 생겼고 사냥과 더불어 초보적인 농사가 시작되어 조, 옥수수, 콩, 깨 등을 심었고
개와 돼지 닭들을 가두어 놓고 길렀으며, 움집이란 거주형태도 조금씩 발달하여 온돌과 비슷한 구조의 난방도 하고 살게 되었다.
4신수(四神獸)가 차례로 천상의 신들을 대신해서 인간을 보살펴 준
1만2천년이 흐르는 동안 지구의 환경은 조금씩 바뀌었고 빙하가 물러간 후 따뜻한 초원지대였던 천계의 일대가 점차 추워지기 시작하면서 오늘날의
시베리아 기후대에 속하는 지역으로 바뀌어 갔다. 조금씩 여름이 짧아지고 겨울이 길어졌으며, 겨울의 바람은 갈수록 매서워졌다. 많은 동물들이
남쪽으로 사라져 가고 겨울이면 사냥할 동물을 찾기가 쉽지 않게 되었다. 이때의 상황을 우리의 옛 역사서인 "환단고기(桓檀古記)"에는 사람은 많고
생산은 적어 갈수록 천계의 백성이 살기에 어려워지므로..." 하고 기록하고 있다. 그래서 하늘나라 여러 신들이 의논해서 지상에 내려가 있는
백호에게 지시하기를, 3천년이 끝나는 날 백호는 천상으로 돌아오지 말고 후일에 천계가 더 이상 사람이 살기에 힘든 땅이 되었을 때 천계의 백성이
이주해 갈 곳을 찾아 스스로 그 땅이 되라 하였다.
하늘의 명을 받은 백호는 훗날 천계의 사람들이 세세토록 살아갈 땅을 찾아 해뜨는
곳 동쪽을 향하여 달려가 마침내 땅의 끝에 다다르니 그 곳이 바로 하늘 백성의 터가 될만한 위치였다. 백호가 달려온 서쪽 대륙을 향해 크게 한번
울부짖고는 그대로 바다에 뛰어들어 땅으로 변했는데, 그 땅이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한반도이다. 일제가 우리 나라를 강점했을 때 이 땅의
모양이 토끼의 형상이라고 비하(卑下)시켜 주입시킨 탓에 우리 나라 사람들도 토끼 형상의 땅이라고 생각들 하지마는 이 땅은 영락없이 백호가 두
앞발로 대륙을 부여잡은 형상을 하고 있으며 삼천리 강산은 글자 그대로 백호의 기상과 하늘의 기운이 담긴 땅이다.
백호가 동쪽으로
떠나간 후 천계의 사람들 기억 속에는 하늘이 백호를 보내어 미리 준비시킨 신의 땅에 대한 전설이 남게 되었고, 수천 년이 흐르는 동안에도
잊혀지지 않고 전해져 갔다. 전설로 전해져 온 그 약속의 땅, 신의 땅에 대한 기록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언젠가 천계의 땅이 좁고 척박해
지면 사람들이 찾아갈 하늘 백성의 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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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을
건너지 않고는 그 땅을 밟을 수 없으니 섬은 섬이나 섬이 아니고, 이 세상의 가장 큰 땅(註 : 유라시아 대륙)과 가장 큰 물(註 : 태평양)의
중앙에 있어 크지도 작지도 않으며, 가장 추운 곳과 가장 더운 곳의 한 가운데라 춥지도 덥지도 않으며 천하의 사계절이 모두 있어 추위와 더위와
따뜻함과 서늘함이 번갈아 오고 가며, 땅에서 나는 모든 것 중 그 곳에서 나지 않는 것이 없으며,(註 : 한반도는 지질학적으로 광물의 박물관으로
불린다. 아마 석유도 곧 발견될 것이다.) 물은 맑고 땅은 기름지도다. 땅의 생김은 백호의 형상이니 세상에서 신이 그 경계를 그린 유일한 땅이니
이를 금수강산(錦繡江山)이라 하리라. 훗날 있을 마지막 개벽(開闢)의 시대에 세계의 모든 밝은 기운이 그리로 모일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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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내용이었다.
다만,
그 땅을 찾아 갈 시기와 그 땅의 표식에 대해서는 대대로 환인만이 그 비밀을 알고 계셨다. 백호가 동해 바다로 떠날 즈음, 이제 인간의
인지(認知)가 발달하고 그 영적(靈的)인 능력이 능히 하늘을 공경하고 사람끼리 위함(敬天愛人)이 가능한 정도가 되매 비로소 천상의 하늘님이
지상의 인간을 친히 보살필 때가 이르렀다. 이 때로부터 하늘의 상제가 지상에 나리셔서 사람들이 모여 사는 나라를 처음으로 세우니 이것이 인류
최초의 국가인 환국(桓國), 즉 하늘 나라(한:하늘)가 되었고 사람들은 그 분을 "안파견(安巴堅)" 또는 "한님(하늘님)"으로 불렀으니 훗날
한자로 표기할 때 환인(桓因)이라 하였다.
환인은 하늘의 상제(上帝)가 그 자리를 바꾸어 지상에 오신 것이니 인간처럼 정해진 수(壽)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때가 되면 천상으로 돌아가고 또 다시 새로운 모습으로 내려오시니 첫 번 째 한님이신 안파견으로부터 마지막 환인이신
지위리(智爲利)까지 7대(代) 3천년을 역사하시니 이 시대를 천신역사(天神役事)의 시대라 한다.
4신수(四神獸)의 천신역사 시대
1만2천년동안 사람들은 천계를 중심으로 이 지구상의 곳곳으로 퍼져 나갔는데, 당시에는 유라시아 대륙의 끝과 알래스카가 연결되어 있어 동쪽으로
이동해간 사람들은 알래스카를 지나 북미(北美)로 들어갔다.(註 : 당시의 알래스카는 오늘날처럼 만년설에 뒤덮인 상태가 아니었으며 에스키모인들은
우리 한국 사람들과 외모로 봤을 때 전혀 구별할 수가 없을 정도로 완전히 같아 보인다. 오히려 중국이나 일본인들은 한국 사람과 나란히 보면
약간의 차이를 느낄 수 있는데 한국인과 에스키모인들은 그 정도의 차이도 없다. 또한 이때에 북미로 건너간 천계 사람들의 후손인 아메리카 인디언
역시 우리와 혈통이 같으며 언어의 구조가 같다) 한편으로 남쪽으로는 대흥안령 산맥을 넘어 황화와 양자강을 건너 히말라야에 이르렀으며 서쪽으로는
몽고의 초원과 고비사막을 넘어 메소포타미아 지방에까지 그 발길이 닿기에 이르렀다.
당시에 세계 각지에는 빙하시대에 따뜻했던 몇몇
지역에서 변화되지 않고 살아남은 마지막 유인원(네안데르탈인)들이 아직도 군집해서 살고 있었으므로 인류의 이동은 필연적으로 이들과의 충돌을 야기
시켰고 보다 발달한 그들의 사촌인 인류에 의해 유인원들은 그 주거지에서 쫓겨나 멸절되어 가야만 했다.(註 : 고고학적 발굴의 근거와 인류학의
발달은 네안데르탈인으로부터 인류가 진화한 것이 아니라 빙하기의 말에 갑자기 나타난 인류에 의해서 네안데르탈인들이 멸종되었다는 것을 밝혀내게
되었고 이것이 인류학의 정설로 되어 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이 사촌간인 유인원과 인류와의 사이에 통혼(通婚)이 이루어지기도 하였으므로
진화의 벽을 뛰어 넘은 인류의 핏속에 그 이전 단계의 동물인 유인원의 피가 섞이면서 인류는 복잡한 분화의 길을 걷게 되었다.
처음
안파견께서 천계에 내려오신 것이 지금으로부터 9천년 전 그러니까 서력(西曆)으로 치면 B.C.7000년경의 일이었다. 그때 인간들은 신석기
시대의 후기에 접어들고 있었는데 천계의 사람들은 밑바닥이 뾰족하고 무늬가 없는 그릇들을 손으로 빚어 만들어 사용할 줄 알았고 천해(天海 :
바이칼호)의 가장자리에서 조개를 줍기도 하고 생선 가시로 만든 낚시로 고기를 잡기도 했다. 물론 남자들의 주된 일은 사냥이었다. 그때까지도
사람들은 옷으로 앞을 가릴 줄을 몰랐으므로 안파견께서 처음 지상으로 오신 후에 제일 먼저 해야했던 일은 앞을 가릴 옷을 찾는 것이었다.
천제(天帝)의 체통으로 벌거벗고 다닐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천제 환인께서 풀잎을 덩굴로 엮어 허리에 둘렀다. 그때의 안파견의 모습은
오늘날 아프리카의 추장과 비슷했을 것이다. 안파견께서 자신이 하신 것과 같이 사람들에게 옷을 만들어 입으라 하시고 당시의 사람들이 두려워하던
번개와 바람과 비를 설명하여 안심하게 만들었다. 사람들에게 먹기 전에 자신에게 보이라 하셔서 독 있는 식물과 먹어도 좋은 열매를 일일이 가리어
가르쳐 주셨고, 과일을 먹은 후 씨를 뿌리면 그 자리에 똑 같은 나무가 자라는 것을 보여주셨다. 천계의 주위에서 사람을 괴롭히던 호랑이며 늑대며
승냥이들이 천제께서 오신 후로 사람 사는 마을 주위에 접근하지 아니하므로 사람들이 마음놓고 아이들을 키울 수 있게 되었다.
사람이
죽으면 들판에 버려 짐승들의 밥이 되던 것을 그러지 말라 하시고 장사(葬事)지내는 법을 가르쳤고,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순환하는 것과 낮과
밤이 되풀이되는 것을 이치로서 가르쳐, 때가 되면 양식을 준비하고 불을 간수하며 그 주거지를 관리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모든 사람들이 환인
천제를 숭앙하고 진심으로 따르며 복속하여 점차로 사람이 동물과 다른 구별들이 지어져 갔다.
많은 사람들이 나무를 줏어 오고 흙을
이기어 환인 천제께서 거하실 집을 지었는데 그 집은 마당에 천해 주위의 청석(靑石)을 깔고 지붕 위에는 사철 푸른 잎으로 덩굴을 놓아 햇빛과
비를 가렸고 벽에는 풀잎을 짠 액을 발라 칠을 하였으므로 사람들이 세 가지 푸른색의 궁이라 하여 삼청궁(三靑宮)이라 불렀다. 물론 환국이
번창하면서 역대 환인들께서 개수를 거듭하여 환국 말기에는 궁궐로서 손색이 없는 건물이 되었지만 안파견 환인 시대의 삼청궁은 요즘 시골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초가집과 같았다. 하지만 당시로서는 인류 최초로 지붕을 얹고 칠을 한 건물이었다. 동굴과 움집밖에 만들 줄 몰랐던 당시의
사람들에게는 환인 천제의 궁이야말로 세상에 처음 지어진 문명된 주거였던 것이다.
삼청궁이 완성되자 환인께서 뜰에 지석(솟대)을 세우시고 그 둘레에 사람들이 모이게 하신 다음 과일과 곡식을 올리고 처음으로 하늘에 제를 올렸다. 인류
최초로 하늘에 대한 제사가 이루어지던 날, 천계의 사람들은 나무등걸(당시의 유일했던 타악기)을 동물의 뼈다귀로 두들기며 서로 손을 잡고 지석의
둘레를 돌며 춤을 추었다. 노래(라기 보다도 동시에 악을 쓰며 고함을 지르는 것이었지만)도 불렀다. 오늘날 우리민족의 춤 강강수월래의 풍속도
환국 시절부터 솟대의 둘레를 돌며 춤추던 것의 전승이라 할 수 있다. 실로 1만년을 넘게 이어져 내려온 춤인 것이다. 그 후부터 남자들은 사냥을
나가서 짐승을 잡아오면 삼청궁 마당에 모아 놓고 제를 올려 사냥을 도와준 하늘에 감사했고, 여자들은 과일을 따오면 역시 솟대 앞에 모아 놓고
풍성한 과실을 주신 하늘에 감사하는 의식을 올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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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에 지구에는 커다란 지각의 변동과 기후의 일변이
있었다. 세계 곳곳에 엄청난 홍수가 있었고 대륙의 태반을 덮고
있었던 눈과 얼음들이 따뜻해 진 기후에 녹아 내리면서 세계의 해수면이 상승하여 아시아와 북미대륙의 사이가 베링 해협이 생기면서 끊어 졌고,
대서양(大西洋)의 물이 지브랄탈의 방벽을 넘어 대륙으로 쏟아져 들어오면서 여러 원시문명을 수장시키고 지중해(地中海)가 생겼다. 호주와 아시아의
남쪽을 이어주던 기다란 육지는 바다에 잠겨 곳곳에 섬을 남기면서 오스트레일리아를 문명세계의 바깥에 던져 버렸다. 이 천지공사(天地公事)를
혁서천제가 주관하여 인류의 탄생을 있게 한 개벽을 마무리 지으셨다.
원래 이 세계는 태극(太極)에서 출발해서 음양(陰陽)의
조화(造化)와 오행(五行)의 상극상생(相剋相生)으로 움직이는 것이어서 그 어느 하나도 이 법칙에서 벗어나 홀로 존재하는 것이 없는 법이다.
생(生)이 없는 명(命)이 없고, 귀(鬼)가 있어야 신(神)이 있으며, 혼(魂)과 백(魄)이 같이 있어야 생명이 살고, 땅이 없는데 하늘이 있을
수 없고, 양기가 일면 음기가 같이 동하는 법이다. 따라서 개벽 이후에 이 우주의 모든 양기의 정수(精髓)가 천계에 모여 인간을 만들 때, 이
지구의 음의 극지인 숙방(肅方)에는 음기(陰氣)의 진수(眞隨)가 서리었고 그 기운이 역시 인간을 탄생시키게 되었다.
양의 극지인
천계가 <커다란 땅에 둘러싸인 작은 물>이었는데 반해 음의 극지인 숙방은 <큰물에 둘러싸인 작은 땅>이었다. 물론 그
위치는 천계의 정 반대편에 있었다. 대서양의 한복판에 있던 땅에서 발생한 이 음지의 인류는 비슷한 시기에 전세계로 퍼져나갔다. 이 땅의 이야기는
아트란티스의 전설로 플라톤의 <국가>를 비롯한 고대 그리스의 몇 가지 저서를 통해 후대에 전해졌다. 아트란티스인들은 동쪽으로 아프리카
땅을 밟은 후 수천 년을 북상해서 마침내 지중해를 건너 유럽에 이르렀고(아직 지중해에 바닷물이 들어차기 전에 - 지금 지중해의 바닥에는
고대문명의 흔적들이 발견되고 있음) 서쪽으로는 남미의 천연림 속으로 사라져 갔는데 이들이 훗날 마야와 잉카의 문명을 일으키게 된다. 즉 지금
인류학이 약 3만년 전에 발생한 두개의 원초인류로 보는 북방인류(황인종)가 우리의 조상들인 밝달족이요, 남방인류(흑인종)라 부르는 니그로가 바로
이 음지의 인류이다. 양은 음을 부르고 음을 양을 끌어당기는 것이어서 양의 극지인 천계에 탄생한 인류는 음의 인류요, 음의 극지인 아트란티스에서
태어난 인류는 음기가 잉태시킨 양의 인류이다. 그래서 우리 민족의 특질이라 말해지는 '은근과 끈기'는 바로 음의 성질이다. 인체에 있어서도 양과
음의 성질은 질병에서 두드러진 차이를 보인다. 양의 장부에 병이 들면 그 증세가 즉각 나타나고 치료의 효과도 쉽게 나타나지만 음의 장부에 드는
병은 그 증세가 완만한 대신 쉽게 낫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 민족의 왕조는 쉽게 망하지 않고 오랜 세월 동안 병들고 쇠약해진 끝에야 막을
내린다. 한번 왕조가 서면 최소한의 수명이 5백년이다. 신라 천년은 전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수명이다. 고조선에서 고구려 발해로 이어지는
2천년의 영광 후에 한민족의 쇠퇴도 참으로 완만한 것이었다. 이제 세계사의 주역으로 재등장하는 것도 일시에 일어서는 형태가 아니라 온갖
우여곡절과 부침을 겪으면서 서서히 진행이 될 것이고 한번 한민족의 시대가 서게 되면 역시 천년을 이어갈 것이다. 영광도 몰락도 흥기도 부침도
완만하게 진행되는 것이 바로 음의 민족으로서의 성질이다. 그것을 우리는 <은근과 끈기>라 한다.
양과 음의 두 극지에서
발생해서 동시에 전세계로 퍼져나간 두 인류는 2만년이 흐른 후 최초로 대면하게 되는데, 이때에 이 두 원초 인류간에 벌어졌던 대 투쟁(大鬪爭)의
서사시(敍事詩)가 바로 <일리아드 오딧세이>의 이야기이다. 지중해를 건너 그리이스에 정착했던 남방인류와 서남아시아를 지나 중근동에
도달한 환족(桓族)이 세운 국가인 독로국(獨盧國 : 지금의 터키다. 터키의 古언어와 우리말은 그 체계상 아주 유사하다)과의 싸움이 바로
그것이었다. 환국 십이연방의 하나인 독로국이 바로 용장 헥토르가 아킬레스와 싸웠던 트로이의 한자표기이다. 양의 인류인 그리이스의 군대는 수십
년의 원정에도 불구하고 독로국을 이기지 못하다가 마지막에 거대한 목마를 만들어 거짓 항복함으로써 트로이를 함락시켰다. 그러나 그 독로국의
이웃에는 그리이스 보다 훨씬 강성 했던 수밀이국(須密爾國 : 슈메르의 한자표기다.)이 있어 이의 동진(東進)을 저지했다. 그러나 이것은 역시
훨씬 후대의 일로써 제 5대 환인이신 석제임과 치우천왕 대(代)의 일이었다.
두 원초 인류가 하나는 북에서 남으로 다른 하나는 남에서 북으로
그 활동 영역을 넓히게 되자 처음에는 곳곳에 남아 있던 유인원들과의 싸움이 계속되다가 마침내 두 발상지의 중간인 중근동에서 서로 맞닥뜨리게
되었다. 이것이 양대 인류가 부딪힌 최초의 격돌이자
이문명(異文明)간의 대충돌이었다. 이 독로국과 그리이스간의 전쟁이 있기 2,000년 전인 혁서천제의 시절에 그 유명한 대홍수가 있었고,(註 :
비도 물론 그 원인이었지만 빙하기의 얼음이 녹아 내린 홍수였음) 급격한 지각의 변동이 뒤따라 음의 인류의 발상지였던 숙방이 물 속에 가라
앉았다. 아티란티스의 전설과 길마메쉬 서사시를 비롯한 고대 문명이 남긴 많은 기록 속에 당시의 홍수와 지진, 화산의 폭발 등이 남게 되었고
구약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도 이 때의 이야기가 구전되어 오다가 정리된 것이다.
이러한 인류의 확산 과정에서 유인원들과 양대
인류(兩大人類)가 통교하게 되고 혼혈이 섞이면서 수많은 인종이 나타나게 되는데 여기에서 오늘날의 백인종이 등장하게 된다. 인류학적 관점에서
백인은 원초인류로써 뿌리가 아니라 훨씬 후대에 나타나는 가지에 지나지 않는다. 미개한 유인원들의 피가 섞이면서 백인들에게는 태초의 순수한 하늘의
정기가 둔화되고 그 육체와 심성 속에 야만과 동물적인 우둔함이 심어졌다. 그들의 하얀 피부는 이종간의 교배에 의한 변종으로서 돌연변이에 가깝고,
그 크고 높은 코는 입 보다 코를 먼저 갖다대는 짐승들의 흔적이며 몸에 덮인 노란 털들과, 금발의 머리들 역시 동물의 털로서의 흔적이며, 여러
가지 습성들 역시 동물적인 것들이 많이 남아 있게 된다. 지금까지의 모든 인류사는 이 원초적인 양대 인류간의 투쟁과 화합의 기록이며, 음과 양의
서로 다른 기질에 따른 문화와 문명과 종교의 성격이 다른데서 오는 격돌의 역사였던 것이다.
이중 한쪽의 정통인류라 할 수 있는 우리
민족이 이 전 과정을 통하여 어떠한 역할을 담당했는지, 어떤 존재의의를 갖고 있는지, 앞으로의 미래세에 이 적통 인류가 무엇을 해야하는지,
무엇이 예정되어 있는지, 이런 것들을 밝히는 것이 바로 <개천록(開天錄)>과 이어지는 <후천사(後天史)>의
내용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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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神誌)의
환국삼웅전(桓國三雄傳)에 나오는 독로국의 왕자 혁도는 일리아드 오딧세이에 나오는 헥토르일 것이고 아라고사란 나라의 장수로 나오는
악귀나수(惡鬼裸獸)가 바로 그리이스의 영웅 아키레우스인 것으로 보인다. 환국삼웅전 외에도 신지의 연방기(聯邦記) 독로국편과, 수밀이국편,
파내류국편 등에도 독로와 아라고사의 전쟁에 대한 기록이 있다. 그 전체적인 흐름으로 보아 호머의 일리야드 오딧세이와 대단히 흡사하다. 다시
말하면 신지의 환국삼웅전은 동양에서 본 트로인 전쟁사이다. 이것을 각색한 것이 구름의 소설
<황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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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서천제께서 그 수를 다하고 천상으로
돌아가실 때 천제께 아홉 명의 아들이 있어 그 첫 아드님이 삼신의 영기를 받아 그 덕이 산과 같고 그 지혜가 바다와 같이 깊으시므로 삼청궁에서
제위를 물려받으셨다. 이가 고시리 천제(古是利 天帝)이며 나머지 여덟 분의 형제가 당시에 천계를 중심으로 사방 2천리에 퍼져 있던 환국의 여러
부족들을 각각 맡아 나누어 다스리시니 이를 구환(九桓)이라 한다. 그리고 혁서천제의 아들 아홉 형제를 구황(九皇)이라 하여 당시의 환국을
구환64민(九桓六十四民), 또는 구황64민(九皇六十四民)이라 하였고, 이 64민의 씨족이 각기 아홉 형제의 성을 따랐으므로 천하에 9본
64성씨가 생겼다. 이 구황이 훗날 석제임 환인 대에 열두 개의 분국으로 나뉘어서 환국 12연방이 되었다.
혁서제가 고시리께 위를 물리실 때에 처음으로 우주만물의 원리와 세상의 이치와 삼신의 도를 담은 게송을
불러 내려주시니 고시리께서 한번 듣고 다 외워 길이 전해지게 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천부경①이었다. 고시리천제께서 선제(先帝)로부터 천부경을 받고 이를 근본으로
삼아 우주자연의 법칙을 깨닫고 그 원리를 하나의 그림으로 그리시니 그 모양이 커다란 하나의 원 속에 삼극(三極)이 서로 조화하여 어우러진
것이었다. 이 그림이 바로 태극②의 형상으로 삼청태극(三靑太極)이라 불려졌다.
고시리 천제의 대에 와서 흙을 이기어 말린 후
불에 구어 벽돌을 만들 줄 알게 되었고, 기와를 서로 이어 비가 새지 않는 지붕을 얹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었다. 이에 삼청궁을 크게 개축하여
천제께서 방위를 잡고 삼청이 서로 조화를 이루는 전각을 세우므로, 이때부터 삼청궁의 의미는 태극의 세 기운을 일컬는 삼청의 궁으로 의미가
바뀌었다. 훗날 모든 도교(道敎)의 사원을 삼청궁이라 하고, 도교가 번창했던 송, 원 시절 궁전이나 대궐에는 반드시 삼청전이 따로 있게 되었다.
삼청은 곧 삼신(三神)이라 우리 나라에서는 이를 삼신각(三神閣)이라 하고, 불교가 이 땅에 들어온 다음에도 태극사상을 받아들여 절마다 삼신각을
두게 되었다. (삼신각은 원래의 불교에는 있지도 않을 뿐 아니라 우리 나라를 제외한 어떠한 나라의 불교사원에도 삼신각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고시리천제의 재임 중에 사람들은 비로소 씨족사회를 구성하기 시작했고 점차로 몇 개의 씨족들이 그 근거지를 중심으로 부족으로
통합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전 지구적으로 볼 때에는 이제 인류의 발길이 지구의 곳곳에 닿아 무리의 수가 많아진 곳에서는 비로소 훗날 그 흔적이
발견될 수 있을 만한 규모와 수준의 문명을 일으키게 되었다. 물론 인류 최초의 문명이라 하면 천계 주위의 환국 문명과 혁서제 시절에 바다 밑으로
가라앉아 버린 아티란티스 문명이 되겠지만 그 두 문명의 흔적이 하나는 그 이후 역사에서 주목을 받지 못한 외지(外地)가 되었고, 또 한 문명은
바다 밑에 잠기어 버려 그 자취가 전해지지 않으므로 부정되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그러나 인류의 모든 발자취는 현재까지
발견된 것보다 앞으로 발견될 것들이 훨씬 많으므로 머지 않아 두 문명의 흔적들이 발굴되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것으로 믿어도 좋을 것이다.
고대의 유물들이 발굴되고 발견될수록 인류의 역사는 점점 더 오랜 이전으로 소급해가고 있다. 이십 년 전만 해도 인류문명의 발상지로서 황화,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인더스를 들어 사대문명의 발상지 어쩌고 가르쳤지만 슈메르 문명의 흔적이 발견된 이후 오늘날은 더 이상 사대문명설을 말하지
않는다. 독로국(트로이)의 유적은 이미 찾았지만 그 흔적이 너무 미약해 당시의 일들을 밝히기가 어렵고 아틀란티스의 유적에 대한 조사도 한참 진행
중이다. 언젠가 환국 문명이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내는 날 인류사는 근본적인 수정을 하게될 것이다. 평양이 불타던 날 사라진 많은 고대의
역사서들이 하나씩 나타나게 되면서 동양사의 근본이 바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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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당시에는 아직 문자가 없어 글로 담지
못하고 다만 말로써 암송되어 전해지다가 훗날 지위리 환인께서 옛부터 삼청궁의 비처(秘處)에 소장되어 있던 용경의 뒷면에 전자(篆字)로 그 뜻을 새겨 환웅께 물려주시게
된다. 후일 환웅께서 신시(神市)를 여시고 백두산 중턱에 용경에 전자(篆字)자로 쓰여있던 이 경을 가림토(한글의 창제시 그 바탕이 되었던 우리의
옛글)로 새긴 석비(石碑)를 세우셨는데, 고조선대에 이르러 여러 곳에 비가 세워지고 경이 전해졌으며 낙랑시대에 까지도 비가 남아 있었다 전한다.
고구려 멸망 후 사람들이 이를 해독치 못하여 괴이한 비로 여기다가 통일신라시대에 이르러 당대의 석학(碩學)이라 하는 최치원이 이를 해독하여 여든
한 글자의 한자로 번역하여 오늘에 전해지고 있다.
② 태극이란 것은
주역(周易)과 음양오행의
중심이 되는 것인데 주역의 발상국이라 하는 중국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우며 오히려 우리 나라는 이것으로 국기(國旗)로 삼고 있다. 조선시대까지도
격식을 갖춘 양가집의 대문에는 이 삼청 태극이 그려져 있었는데 현재 태극기에 그려지고 있는 것은 이청
태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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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에 환국은 서서히 전성기로 접어들어 나라의 넓이가
동서로 2만리요 남북으로 5만리에 달하였고 비리국(卑離國),
양운국(養雲國), 구막한국(寇莫汗國), 독로국(희랍과의 싸움에서 트로이를 잃은 후 동쪽으로 옮겨 구다천국(句茶川國)이라 개명함),
일군국(一郡國), 우루국(虞婁國), 객현한국(客賢汗國), 구모액국(句牟額國), 매구여국(賣句餘國), 직구다국(稷臼多國), 사납아국(斯納阿國),
수밀이국(슈메르)의 12연방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당시에 세계 각지에는 환인의 덕음(德音)이 닿지 아니하는 수많은 종족들이
곳곳에 산포되어 더러는 정착하고 더러는 무리로 떠돌며 후미진 곳의 사람들은 아직도 구석기 시대의 생활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반면에 환국의
12연방은 점차로 부족국가(部族國家)로서의 면모(面貌)를 갖추어 나갔다. 자연히 12연방들 간에도 영토와 산물을 위한 다툼이 생겨 고시리
환인께서 주우양(朱于襄) 환인께 위를 물리실 즈음에 독로국과 직구다국 간에 큰 싸움이 벌어졌다. 처음에는 직구다국이 우세하여 독로국의
토성(土城)이 있던 쿤란을 포위하여 60여일 동안 치열하게 싸웠다. 당시의 병장기는 돌로 만든 도끼와 창, 몽둥이가 주였는데 독로국 사람들은
돌팔매질이 장기여서 다가오는 직구다국 사람들을 돌을 던져 무수히 쓰러뜨렸고, 직구다국 사람들은 나무를 얽어 방패를 만들어 돌을 막으며 토성을
기어올라갔다. 마침내 토성을 빼앗긴 독로국 사람들이 자그마한 언덕으로 도망가 몰렸고 직구다국 사람들이 그 언덕 아래에 몰려와 둘러싸기에
이르렀다.
산 위에는 부상당하고 지친 독로국 사람들이 마지막 저항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그 때에 독로국의 구원군이 직구다국의 뒤쪽에
나타났다. 그들은 통나무로 만든 배를 타고 백해(카스피해)를 건너 쿤란의 뒤에 상륙했고 갑자기 등뒤에서 나타난 독로국의 공격에 직구다국 전사들은
당황하여 달아나기 시작했고 마침내 크게 지고 말았다. 이 싸움에서 직구다국의 장정들이 천명이나 죽었고 마침내 직구다국은 금산(金山 : 지금의
히말라야의 서쪽 네팔 부근)아래로 옮겨가게 되었다.(석가모니가 이 직구다국 사람들의 후손이다) 이 싸움에서 이긴 독로국은 서남아시아의 주인이
되었지만 그 후 수밀이국의 세력에 밀려 점차 서쪽으로 옮겨가게 되었다. 이 독로국과 직구다국의 싸움은 트로이전쟁이 있기 570년 전의 일이었다.
주우양 환인의 대에 와서 수밀이국은 백해 남쪽에 제국을 건설할 만큼 융성해 졌고 파내류산(지금의 파미르고원 : 파의 원산지이다.)에서 가져온
파를 대량으로 심어 주식으로 삼았다.(고대 이집트인의 주식도 이 파이다)
주우양 환인께서 처음으로 전자를 만들어 제방에 훈령을
보냈는데 전자는 진흙에 써서 그것을 말린 후 보관하였다. 수밀이국은 이 전자를 기초로 독특한 설형문자(楔形文字)로 발전시켜 사용했는데 환국의
사람들은 이것을 쓰기가 어려워 오히려 그림으로 문자를 대신했다. 훗날 신지혁덕이 정리해서 한자가 되는 초기의 그림들이 사용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때 천계에 커다란 운석이 떨어져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한 일이 생겼다. 사람들이 운석이 떨어진 자리에 가본즉
아직도 대기와의 마찰과 충격열로 녹아 내리고 있는 누런 돌들이 있었는데 광채가 났다. 토숙(土塾)이 기다란 작대기로 그것을 뒤척이니 그 끝이
타들어 갔다. 돌창으로 이리 저리 찔러 보니 찌른 대로 모양이 생기는데 곧 굳어 버리는 것이었다. 차가워진 다음에 그 끝을 구부리니 부러졌는데
토숙이 그것을 가져다가 불 속에 넣고 다시 녹여 봤더니 녹이면 다시 물러져 돌로 그것을 치는 대로 여러 가지 모양을 만들 수 있었다. 평평하게
두드려 편 후에 식히니까 돌 보다 반반하고 광택이 나면서 거기에 사람의 얼굴이 비쳤다. 토숙이 그것을 환인께 바치니 환인께서 보시고 이것은 무른
돌이라 가히 요긴하게 쓰일 것이니 더 찾아 보라 하셨다. 천계 주위의 땅위에 드러난 여러 철광석을 주워서 불에 집어넣었는데 나무 가지들을 모아
벽돌을 쌓아 불을 지핀 열로는 철은 녹이지를 못했고 구리만이 열로 녹일 수가 있었다.
이후에 사람들은 구리만 보면 주워다가 여러 가지
물건들을 만들었는데 몇 가지 색깔이 다른 돌들을 섞어서 녹이면 굳은 후의 빛깔과 그 단단함이 다르다는 알게 되면서 수백 년이 흐르는 동안 경험이
축적되어 마침내 석제임(釋堤壬)시절에는 청동(靑銅)이 만들어지게 되어 청동기 문화의 시작을 보게되었다.
석제임 환인 대에 와서 천계 주위는 점점 더 추워져 가고 여름이
짧은 대신 겨울이 길어져 갔다. 겨울에는 살을 에는 매서운 북풍이
휘몰아쳤고 천해는 얼어붙어 버렸다. 무섭게 많은 눈이 내려 겨울 내내 천계는 눈 속에 파묻혔고 짐승들은 동면에 들어갔다. 강과 바다가 얼어붙어
고기를 잡기가 힘들었고 온천지가 눈에 뒤덮인 들판에는 짐승들의 모습을 보기가 쉽지 않아 사냥도 곤란했으며 더구나 곡식류나 과일과 같은 채식은
불가능한 일이 되었다. 아직 까지 천을 짤 줄 몰랐던 환국 사람들이 추위로부터 자신을 감쌀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짐승들의 모피였는데 몸에 두를
만큼 큰 짐승들의 수효가 점점 줄어갔다.
그러나 천계의 백성들은 환인과 이사 이백의 가르침을 쫓아 그러한 자연환경을 극복해 가는
지혜를 발달시키면서 점차로 문화라는 것의 형태를 만들기 시작했다. 가옥의 형태를 발달시켜 추위가 스며들지 않는 밀폐된 공간으로서의 거주지를
만들고 천해 주위의 청석들을 주워 바닥에 깔고 그 아래에서 불을 때어 돌이 그 열을 오랫동안 유지함으로서 잠자는 동안에도 집안이 따뜻할 수 있게
하는 온돌이라는 것을 만들어 추위를 이겨내는 지혜를 발휘했다. 물론 초기의 온돌은 몇 개의 작은 돌 위에 넙적한 큰돌을 올려 그 밑에 땔감으로
불을 지펴 돌을 데우는 단순한 것이었는데 밤이면 가족들이 이 뜨거운 돌 주위에 둘러앉아 이야기했고 또 그 둘레에서 잠을 잤던 것이다. 기나긴
겨울은 사람들의 생활에도 많은 변화를 주어 사냥이나 낚시를 할 수 없는 시간에 다른 것을 하도록 만들었다.
사람들은 겨울 동안에
토기(土器)를 만들었고 돌을 갈아 여러 가지 연장을 만들었으며 여름에 있었던 사냥이나 혼인의 일들을 떠올리며 그것을 그림으로 남기게 되었다.
처음에는 토기를 만들 때 그릇의 바깥쪽에 단순한 무늬를 넣던 것을 점차 어떤 형태를 가진 그림으로 발전시켜 자기가 잡았던 큰 소나 곰의 그림을
그려 넣기도 하고 자기 가족들을 그려 넣기도 했다.
또한 이때에 환국에는 여러 가지 원시문자(原始文字)들이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문자시대(文字時代)가 서서히 열리고 있었다. 고시리 대에 환인의 공식 문서에 사용되던 전자가 있었는데 아무래도 날로 복잡해져 가는 인간 사회의
일들을 담기에 부족함이 있고 또 쓰기가 어려운 글자라 사람들은 그림으로 뜻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사람마다 그리는 방식이 달랐는데 석제임
대에 와서는 거의 3백 개가 넘는 사물을 지칭하는 그림들이 정해져서 통일된 약속으로 쓰이기에 이르렀다. 악기도 여러 가지가 발명되어 속을 파낸
통나무에 가죽을 입힌 북이 만들어 졌고(이때의 북은 가죽이 한쪽 면에만 대어진 것이었다) 대나무에 구멍을 뚫어 입으로 부는 피리 비슷한 것들도
만들어 졌다.
석제임 대에 있었던 가장 큰 변화는 지난 세월 동안 야생동물들이 점차로 가금(家禽)화되어 단순한 식용이 아니라 그
노동력을 인간에게 제공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아직 농경이 발달하지 못해 밭을 간다는 개념이 없었으므로 소를 농사에 이용하지는 못했지만 무거운
돌이나 나무 또는 사냥한 큰 짐승들을 옮기는 데 소를 부리기 시작했는데 아직 바퀴라는 것이 만들어지지 않았으므로 그냥 등위에 싣거나 아니면
대나무나 나무 줄기로 얽어 만든 바구니 같은걸 잡아매어 땅바닥에 질질 끌고 가는 방식이었다. 아직도 말은 야생을 길들이지 못해서 부릴 수
없었는데 말을 사람이 타고 다닐 수 있게 된 것은 훗날 지위리 환인 대에 가서였다.
역대 환인들은 인간의 육신을 가지고 계셨으나 그
도가 하늘과 닿아있고 또한 그 수양의 깊이가 범인(凡人)과 달라 제병(諸病)이 침범치 못하였고 스스로 우주와 일신(一身)의 기를 다스리는 힘이
있어 스스로 돌아가실 때를 정하여 수를 마치므로 가장 오래 지상에 계셨던 고시리 환인이 700년을 채우셨으며 나머지 환인께서도 보통 수백 년의
수를 누리셨다. 그 외에도 삼신(三神)의 법으로 신선의 경지에 다다른 많은 분들이 계셨다.
혁서제 시절에 서방 만리에 환국의 법을
전한 광서제(廣西帝)가 있었고, 주우양 환인의 대에는 발귀리가 있어 동방 삼역에 삼신의 법을 전하였고. 후대에는 자허선인, 법수선인, 자부진인
등 많은 선인들이 나타나 환인과 천지의 법을 논하기도 하고 삼청궁에서 노닐기도 하였다.
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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