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룡산(양산)
01.10 함박등.체이등.죽바우등.시살등.오룡산.
영축산을 가는 우리들 산악회에 동행을 한다.
영축산 오르고 시산제 지내고 하는 사이 오룡산을 다녀올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 시산제를 지내지 않는다고 한다.
오룡산을 가고 싶은데...
옆에 앉은 꿈나무님이 어느코스로 오르는것이 부담이 되지 않겟느냐고 물어와서 통도사 방향 보다는 배내골에서 오르는것이 수월타고
답을 드린다. 운전기사 하고 상의를 해야 한다고 일어서시더니 돌아와서는 말씀이 운전기사가 길이 험하다고 못간다고 한단다.
그러면 거리는 멀지만 한피기재로 오르는것이 그중 덜 가파른데 한피기재에 올라서 영축산으로 능선을 타다가 통도사로 향하는 탈출로
가 많이 있으니까 각자의 체력 여건에 따라 산행하는것도 좋을것 같다고 하니 그렇게 하자고 하신다.
그런데 버스기사 하고 어떻게 타협을 보았는지 버스가 통도사 경내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바람에 일행 한분이 통도사로 들어왔다고 꿈나
무님께 항의가 대단하다. 왜 이곳으로 왔냐는거다. 영축산 가는데 입장료 내고 가는경우가 어디 있냐는거다. 그말도 맞긴 맞다. 그런데
이미 들어와 버린후다.
내가 이곳으로 오라고 하진 않았지만 괜히 미안하다. 분위기가 그렇다보니 시살등이고 뭐고 영축산으로 바로 오르게 된다. 극락암. 백운
암으로 오르는데 이길도 환타지아 에서 오르는 길보다는 조금은 수월하긴 하다.
함박등에 오르니 12시 30분이다. 15시30분까지 하산하라 했으니 3시간의 시간이 있다. 좀 무리가 되기는 하지만 오룡산으로 향하는데
아무래도 걸음이 바쁘다. 그래도 봉우리마다 오르고 조망도 즐기면서 진행을 한다. 시살등에서부터는 미지의 길이고 미답의 길이고 지
도준비도 안돼있다. 이런저런 약간의 긴장과 스릴도 있다. 오룡산엘 도착하니 13시59분이다.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린다. 점심식사를
하고 일어서는데 한시간 정도밖에 시간이 안남았다. 하산시간이 16시 까지만 했어도 얼마나 좋았을까...
하산거리도 만만치가 않아 가능한 속보로 내려서는데도 걸음보다 시간속도가 얼마나 더빠른지 통도사에 도착하니 벌써 하산시간을 15
분이나 지났다. 주차장까지 5분더하면 20분이나 지각을 한셈이 된다. 아무리 급해도 글치 통도사 경내를 안둘러보고 갈수야 없지...
16시가 다되어 조금은 미안한 마음으로 주차장엘 도착하는데 조용하다???
아직 아무도 하산한 일행들이 없다. 30분정도 후에 도착되어질것 같다는 전화가 있었다고 한다. 다시 통도사로 되올라가 경내에서 여유
를 즐기다보니 꿈나무님이 내려오신다. 하산은 "15시30분" 까지 하라고 하시지 않았냐 하니까 대답을 아주 여유 있게 하신다.
"말이 그렇다는 거지~ "
왼종일 지고만 다녔던 포도주를 내어놓을까 하다가 만다.
안해야지 하면서도 또 했다. 헛수고를...
극락암.
백운암 주차장.
찻길이 끝나는 주차장부터 백운암까지는 20여분 올라야 된다. 이곳에도 지게가 유일한 운반 수단이다.
산행을 하면서 쌓여져 있는 돌탑은 많이 보았지만 이렇게 직접 쌓고있는 모습을 본것은 처음이다.
몰지각한 행락객들때문으로 이렇게 눈물의 호소문이 다 등장을 하고 있다.
백운암.
백운암의 목련.
함박재.
영축산으로 향하는 일행들과 헤어져 시살등방향으로 산행을 하게 된다.
함박등을 올라가다가...
함박등(좌)과 영축산(우)
함박등.
함박등에서 바라보이는 신불산과 신불평원.
함박등에서 바라보이는 영축산.
죽바우등에서 되돌아 보이는 신불(좌)영축(우)함박등(중)
죽바우등에서 바라보이는 시살등과 오룡산.
한피기재로 내려서다가 되돌아 보는 죽바우등. 멀리는 영축산.
한피기재.
사거리 갈림길로 영축산.시살등 주능선에서 북서로는 청석우골을 거쳐 배내골로 내려서는 길이고 그 반대방향인 동남으로는 금수암.서
축암을 거쳐 통도사로 내려서는 길이다.
시살등.
통도사 경내에서...
금강계단(국보 제290호)
남쪽에는 금강계단.동쪽은 대웅전.서쪽은 대방광전.북쪽은 적멸보궁 이렇게 사방을 둘러가며 각각의 현판이 걸려있는데 남쪽의 금강계
단 현판은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글씨이다.
석가모니 진신사리.
2층의 넓다란 석단위의 작은 종처럼 보이는 부도안에 석가모니 진신사라를 봉안해 놓은것이다. 이진신사리는 646년(신라 선덕여왕 15
년)에 자장율사가 당나라 종남산에서 불경과 함께 가져온것으로 알려져있다.
대웅전의 꽃창살.
통도사 봉발탑(보물 제471호)
석가모니의 발우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석조물로서 고려시대에 제작된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발우란 스님들이 식사할때 사용하는 식사
용기이자 스승이 제자한테 법을 전하는 전법의 상징물이다. 연꽃무늬가 새겨진 하대(下臺)위에 간주(竿柱)와 상대(上臺)를 설치하고 구
위에 육중한 뚜껑을 지닌 발우를 안치하였는데 이러한 조형물은 국내에서 유일하다고 한다.
통도사 동종(보물 제11-6호)
1686년 조선중기의 승려 시인비구가 만든 종으로 팔괘(八卦)가 돌려 새겨져 있는것이 특징적이며 또한 유일하다.
구룡지.
전하는 이야기에 의하면 이곳에 살던 용은 모두 아홉 마리였는데, 다섯 마리는 오룡동으로 세 마리는 삼동곡으로 갔으나 오직 한 마리만은 굳이 그곳에 남아 터를 지키겠다고 굳게 맹세하였으므로 자장은 그 용의 청을 들어 연못 한 귀퉁이를 메우지 않고 남겨 그 용을 머물도록 했다고 한다. 그곳이 구룡지로 넓이는 얼마 되지 않지만 신기한 것은 아무리 심한 가뭄이 들어도 수량이 줄어들지 않는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