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산(칠곡)
04.24 가산 산성.
칠곡 동명 송림사→ 기성동 삼층석탑→ 진남문→ 치킨봉→ 가산→ 용봉→ 중문→ 진남문→와촌 불굴사→영천 신월 삼층석탑.
사리함.
송림사 5층 전탑(보물 제189호)
통일신라 시대 전탑으로 우리나라에 몇기밖에 남지않은 중에서 상륜부까지 남아있는 희귀한 탑이다. 1959년 해체 보수때에 현재보다
좁은 4.5m정도의 원래의 기단 석축과 초층 몸돌 2층.6층 지붕돌.복발등에서 여러가지 유물이 발견 되었다. 그리고 불상을 모시는 감실
내부에서 조선시대의 목불과 파손된 석불.동물이 발견 되었다. 2층 지붕돌에서는 거북형의 석함속에 사리구가 모셔져 있었는데 녹색 유
리제 사각병과 유리잔.수목형 금제품.옥류등의 유물이 발견 되었다. 이들 모두가 보물 제325호로 지정되어 국립 중앙 박물관에 보관되
었다. 상륜부의 복발안에는 12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청자 상감 원형합이 발견 되었는데 이는 분묘가 아닌 곳에서 청자가 출
토된 예가 드물기에 그 의미가 있다.
칠곡 기성동 삼층석탑(보물 제510호)
이탑은 윗부분이 부서져 있던것을 1971년 해체.복원한것이다. 이탑의 특징은 기단면석에 모서리 기둥을 본떠 새기지 않고 큼직한 창
모양의 眼象만을 새겨둔 점이다. 기단 면석에 안상을 새겨둔 경우가 간혹 있기는 하나 모서리 기둥을 새기지 않고 안상만을 새긴 경우
는 없다.상륜부에는 노반만이 남아있다.
가산 산성(사적 제216호)
이산성은 가산 해발 910m에서 600m에 이르는 계곡을 이용하여 쌓은 방어 성으로 내성.중성.외성으로 이루어 져있다. 내성은 그 길이
가 약 4km이며 동서북의 문지및 8개의 암문이 있다. 중성은 약 460m이며 성문루.위려각이 설치 되었다. 외성은 약 3km이며 남문및 암문
3곳이 설치 되었다. 이성의 주 출입구는 외성의 남문이다. 성내의 건물들은 남아있지 않고 건물터만 남기고 있으나 상당부분의 성벽및 암
문은 원형을 간직하고 있다.
치킨봉.
할아버지 할머니 바위.
오름길에 바라보이는 가산과 용봉.
암문.
가산 정상.
용봉.
용봉 전망대.
불굴사(경상북도 경산시 와촌면 강학리 5번지)
신라 신문왕 10년(690)에 창건한 것으로 흥성기에는 50여동의 瓦家와 12개의 부속암자.8대의 물방아를 갖추고 쌀을 찧어 승려와 신도
들의 공양미를 한 대사찰이었다고 한다. 영조 12년(1736)큰비로 인한 산사태로 대파되어 퇴락 하였는데 그후 전라도 송광사에 있던 노
스님이 現夢을 받아 이곳에 와서 중건하여 원래의 모습을 갖추었다고 한다.
불굴사 삼층석탑(보물 제429호)
이중 기단위에 3층 몸돌을 쌓아올린 이탑은 신라 석탑의 전형적인 양식을 따르고 있는 통일신라 시대의 석탑이다. 상륜부 일부가 없
어졌을뿐 온전한 상태로 보전되어있다.
불굴사 석불 입상(경상북도 문화재 자료 제401호)
고려시대 조성된것으로 추정되는 이석불 입상은 화강암의 바위위에 받침대를 조각하고 그위에 불상을 세웠다. 머리에는 굵로 둥근 육
계가 있으며 머리모양은 특별한 장식이 없는 민머리 형태이다. 얼굴부분은 훼손이 심하여 이목구비를 다시 조각 하였다. 왼손은 분실되
어 원래의 모습을 알수 없었으나 현재는 보주를 받치고 있는 모습으로 수리 되었다.
홍주암 오름길 가장자리의 석탑과...
그 반대편의 미완의 석탑.
불굴암 일명 원효암.
이 석굴은 불굴사가 창건되기 이전에 원효대사가 수도한 석굴이라 전하며 김유신 장군이 통일을 염원하여 기도한 곳으로 전해지기도
한다.
원효대사가 토담을 쌓고 수도했던 장소인데 당시 모셨던 불상은 1970년2월에 발견되어 경주 국립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동 제일 약수.
김유신 장군이 수도할때 사용했던 물이며 원효대사도 수도시 사용했던 식수 이다.
불굴사의 검둥이.
돌아오는길 영천의 한 중국식당엘 들어 섰는데...
영천 신월동 삼층석탑(보물 제465호)
이중 기단위에 3층의 몸돌과 지붕돌을 쌓은 통일신라 시대의 석탑이다. 윗 기단부의 면석에는 八部衆像이 돋을새김 되어있다.또한 보통
석탑의 몸돌인 경우 문짝모양과 자물쇠를 조각하는 경우는 볼수 있지만 이 탑처럼 면마다 무늬를 새기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