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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후에 남는 망자의 기운
호아니와
2006. 3. 28. 00:08
내가 기공을 하면서 확인할 수 있었던 사실 하나는 이 세상에 나서 살다가 이미 죽은 사람의 기운을 내가 느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것이 나의 착각이거나 감각의 속임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나는 배제하지 않는다. 나의 체험(감각)은 이것이 실재하는 대상이라는 것에 의심을 품지 않게 하지만 나의 이성은 계속 그에 대한 의심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산 사람의 기운을 내가 감응하여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나의 이성도 그에 대한 의심을 내려놓는데는 동의를 하고 있다. 산자의 기운은 확인을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그 중 가장 보편적인 것이 몸의 이상에 대한 확인이다. 내가 기운으로 느낀 상대의 몸상태가 실제와 일치할 때는 내가 느낀 기운이 그 상대의 기운이라고 믿어도 되지 않을까 싶다. 집에서 아이가 책상에 앉아 공부를 하고 있는 모습을 봤는데 문득 느껴지는 기분이 있어서 "너 지금 배 아프냐?"하고 물었을 때 아이가 "예, 아까부터 배가 살살 아파요"하고 대답하면 내가 느낀 배가 아픈 감각은 내 아이의 기운임에 틀림이 없다고 추정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런 기감은 초능력이 아니라 한의사분들 중에도 대단히 많은 사람들이 일상적인 진단에 활용하고 있는 감각이다. 구름타운에도 이 정도 기감이 있는 분은 꽤 된다.
기감에 대한 수많은 체험의 축적은 살아있는 사람에 대한 기의 감응은 부정할 이유가 없게 만든다. 문제는 망자의 기운도 그런가이다.
만약 내가 감응하는 노자나 추자나 공자 같은 분들의 기운이 정말 그 분들의 기운이 맞다면 이것은 상당히 복잡한 생각거리가 된다. 그 분들이 돌아가신 지가 2천년이 지났는데도 아직까지 그 기운이 남아있다면 인간의 기운은 영원히 이 공간 속에 존재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물론 구름의 기운도 수만년이 지나도록 우주 속에 존재하는 파동의 하나일 것이다. 나는 "마음의 여행"에서 인간이 죽은 후에 남는 것은 아뢰야식 하나뿐일 것이다라고 추론한 적이 있다. 그렇다면 내가 감응하는 그 기운이 노자나 추자의 아뢰야식일 것이냐 하는 것이 우선 떠오르는 의문이다.
그런데 아뢰야식이 윤회하는 생명체의 영혼의 씨앗이라면 노자나 추자도 벌써 수백번도 넘게 새로운 생명을 받아 환생을 했을텐데 어떻게 노자나 추자일 때의 아뢰야식이 그대로 남아있느냐 하는 의문이 든다. 만약 그 기운이 아뢰야식이 아니라면 인간의 사후에 남는 비물질적인 요소는 아뢰야식 말고도 다른 하나가 더 있다는 얘기가 된다. 그렇다면 부처님도 몰랐던 사실이 하나 있게 된다.
기감으로 내가 확연하게 느낄 수 있는 망자의 기운은 과연 정체가 무엇일까? 무덤 속에 있는 부모님의 기운이 후손에게 작용한다는 풍수도참의 속설이 과연 사실일까?
이에 대한 탐구를 한번 해보았으면 한다. 공부를 거의 하지 않는 구르미가 도덕경의 뜻과 음양오행론을 노자와 추자한테 직접 배우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 지에 대한 답을 찾아보자는 것이다.
구름~~
이것이 나의 착각이거나 감각의 속임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나는 배제하지 않는다. 나의 체험(감각)은 이것이 실재하는 대상이라는 것에 의심을 품지 않게 하지만 나의 이성은 계속 그에 대한 의심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산 사람의 기운을 내가 감응하여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나의 이성도 그에 대한 의심을 내려놓는데는 동의를 하고 있다. 산자의 기운은 확인을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그 중 가장 보편적인 것이 몸의 이상에 대한 확인이다. 내가 기운으로 느낀 상대의 몸상태가 실제와 일치할 때는 내가 느낀 기운이 그 상대의 기운이라고 믿어도 되지 않을까 싶다. 집에서 아이가 책상에 앉아 공부를 하고 있는 모습을 봤는데 문득 느껴지는 기분이 있어서 "너 지금 배 아프냐?"하고 물었을 때 아이가 "예, 아까부터 배가 살살 아파요"하고 대답하면 내가 느낀 배가 아픈 감각은 내 아이의 기운임에 틀림이 없다고 추정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런 기감은 초능력이 아니라 한의사분들 중에도 대단히 많은 사람들이 일상적인 진단에 활용하고 있는 감각이다. 구름타운에도 이 정도 기감이 있는 분은 꽤 된다.
기감에 대한 수많은 체험의 축적은 살아있는 사람에 대한 기의 감응은 부정할 이유가 없게 만든다. 문제는 망자의 기운도 그런가이다.
만약 내가 감응하는 노자나 추자나 공자 같은 분들의 기운이 정말 그 분들의 기운이 맞다면 이것은 상당히 복잡한 생각거리가 된다. 그 분들이 돌아가신 지가 2천년이 지났는데도 아직까지 그 기운이 남아있다면 인간의 기운은 영원히 이 공간 속에 존재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물론 구름의 기운도 수만년이 지나도록 우주 속에 존재하는 파동의 하나일 것이다. 나는 "마음의 여행"에서 인간이 죽은 후에 남는 것은 아뢰야식 하나뿐일 것이다라고 추론한 적이 있다. 그렇다면 내가 감응하는 그 기운이 노자나 추자의 아뢰야식일 것이냐 하는 것이 우선 떠오르는 의문이다.
그런데 아뢰야식이 윤회하는 생명체의 영혼의 씨앗이라면 노자나 추자도 벌써 수백번도 넘게 새로운 생명을 받아 환생을 했을텐데 어떻게 노자나 추자일 때의 아뢰야식이 그대로 남아있느냐 하는 의문이 든다. 만약 그 기운이 아뢰야식이 아니라면 인간의 사후에 남는 비물질적인 요소는 아뢰야식 말고도 다른 하나가 더 있다는 얘기가 된다. 그렇다면 부처님도 몰랐던 사실이 하나 있게 된다.
기감으로 내가 확연하게 느낄 수 있는 망자의 기운은 과연 정체가 무엇일까? 무덤 속에 있는 부모님의 기운이 후손에게 작용한다는 풍수도참의 속설이 과연 사실일까?
이에 대한 탐구를 한번 해보았으면 한다. 공부를 거의 하지 않는 구르미가 도덕경의 뜻과 음양오행론을 노자와 추자한테 직접 배우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 지에 대한 답을 찾아보자는 것이다.
구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