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박근혜의 ‘차도살인(借刀殺人)’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5·31 지방선거 완패가 참렬한 열린우리당의 오열만이 아니다. 정동영 전 의장이 예언처럼 그렇게 말한 뒤 뒷말을 잇지 못한 것은 5월20일 대구 유세였다.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50대 전과 8범의 ‘커터 테러’로 얼굴 바른쪽에 11㎝ 자상을 입은 그날은 돌이켜 열린우리당의 ‘죽음(death)의 D’, D-11일이다.
망연자실―이 역시 죽음 못잖은 참패 후의 침울한 침묵 얘기가 아니다. 테러 당일과 그 이튿날 코리아리서치가 조사한 정당지지도는 한나라당 41.5%, 열린우리당 19.5%였다. 22%포인트, 더블 스코어 이상이었다. 5·31 표심은 각각 53.8%와 21.6%로 32.2%포인트 더 벌렸다(비례대표 광역의원 득표 기준). 또 돌이켜 10일 에 10%포인트, 1일 1%포인트씩 벌어져왔다. 딱 맞아떨어져서 더 쉬운 계산이다.
“국민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잘못을 반성하고 있다”― 테 러 사흘 뒤 범인이 법원의 구속영장 발부에 앞서 실질심사를 받 기 위해 법정으로 가면서 한 말이다. 법관을 대면해서는 한 옥타브를 더 높였다 ― “민주주의를 위해 그랬다.” 테러범이 내뱉 는 그렇고 그럴 말을 뭐 되짚을 일일까마는, 절묘하기로는 그날 이후 열린우리당의 하소연도 그 비슷한 음색이었다. “국민이 매를 들었다면 달게 받아야 하겠지만, 기회를 주시면 심기일전해서 열심히 일할 것”(염동연 사무총장), “한나라당이 싹쓸이하겠다고 호언장담하는데 솔직히 두렵다”(이광재 전략기획위원장)라던 이런 말, 저런 말의 귀를 모으면 선거전략이고 뭐고 다 물건너 갔으니 그저 봐달라는 동정 동냥이었다
그렇다. 그날로 선거는 끝났다(는 사실을 열린우리당은 직감으로 알고 있었던 것이다).
테러범이 벤 것, 거듭 돌이켜 그것은 과연 무엇인가. 박 대표의 얼굴 바른 쪽이 아니라 열린우리당의 그른 열망이다. 병서 ‘36 계’를 뒤져 그 엇비슷한 장면을 찾으면 제3의 계 ‘차도살인(借刀殺人)’쯤이다 ― 남의 칼을 빌려 적을 벤 것이다. 테러범의 커터로써 결국 정적을 베었다는 식으로만 볼 것은 아니다. 우군 까지 벨 수 있고 또 베어야 차도살인의 계답기 때문이다. 차도살인은 우군의 힘을 빌려 적군을 물리침으로써 우·적(友敵)의 힘을 모두 소진시킨 뒤 스스로 그 쌍방을 제압하고 평정하는 계책이라지 않던가.
테러범의 커터 날이 허공과 얼굴을 함께 벤 직후 오세훈 서울시 장( 당시 후보, 지금 당선자)에게 상처를 보여준 뒤 병원에 간 박 대표는 응급실에 도착, 얼굴을 손으로 감싸고 고개 숙여 걷던 다급한 순간에 경호원들이 점퍼로 가리려 하자 이런 말로 사양 했다 ― “괜찮다.” 유정복 비서실장에게는 약간 길게 얘기했다 ― “얼마나 놀랐는가”. 수술 때도 그랬다. 전신 마취를 해야 한다는 의료진 권고를 물리치고 국소 마취를 고집하며 같은 호흡으로 말했다 - “의식을 잃기 싫다.” 첫 실밥을 뽑던 날, 진료과 정에서 생명이 위험할 수 있었다는 의료진 설명에는 제법 긴 말 에 웃음을 섞었다 ― “다칠 때는 그렇게 위험했는지 몰랐다.”
우군에게 우선 칼이 무엇이고 상처가 어떤지 보여준 뒤 그 얼굴 을 가리기도, 의식잃기도 싫다는 박 대표를 앞으로 누군가가 ‘ 유신의 밤거리를 배회하는 공주’쯤으로 깎아내리자면 커터의 날과 그날 5·20을 기억하라는 핀잔 정도는 각오해야 할 판이다. 이명박 서울시장, 손학규 경기지사 등 우군 부장(副將)들을 줄줄이 병실 앞을 오가게 하더니 그로써 대선주자 선호도를 바꿨다. 당외 고건 전 총리까지 버금으로 돌리는가 싶었다. 역시 차도살인 의 내공이다.
지난달 11일 한나라당이 미리 밝힌 박 대표의 대표직 사퇴예정일은 6월16일, 11일 남았다. 당헌·당규에 따라 대통령선거일 18개월 전에 물러나도록 돼 있는 만큼 사퇴 시한은 6월18일이다. 그 러나 그날이 일요일이라 금요일로 이틀 앞당길 만큼 박 대표의 시선은 내년 12·19 대선 너머까지 가닿았음을 지켜보며 36계의 또 다른 칼날 계책을 마저 펴본다. 제10계 소리장도(笑裏藏刀) ― 웃음으로 칼날을 감춘다, 기다려온 그날이 올 때까지.
[[홍정기 / 논설실장]]
5·31 지방선거 완패가 참렬한 열린우리당의 오열만이 아니다. 정동영 전 의장이 예언처럼 그렇게 말한 뒤 뒷말을 잇지 못한 것은 5월20일 대구 유세였다.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50대 전과 8범의 ‘커터 테러’로 얼굴 바른쪽에 11㎝ 자상을 입은 그날은 돌이켜 열린우리당의 ‘죽음(death)의 D’, D-11일이다.
망연자실―이 역시 죽음 못잖은 참패 후의 침울한 침묵 얘기가 아니다. 테러 당일과 그 이튿날 코리아리서치가 조사한 정당지지도는 한나라당 41.5%, 열린우리당 19.5%였다. 22%포인트, 더블 스코어 이상이었다. 5·31 표심은 각각 53.8%와 21.6%로 32.2%포인트 더 벌렸다(비례대표 광역의원 득표 기준). 또 돌이켜 10일 에 10%포인트, 1일 1%포인트씩 벌어져왔다. 딱 맞아떨어져서 더 쉬운 계산이다.
“국민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잘못을 반성하고 있다”― 테 러 사흘 뒤 범인이 법원의 구속영장 발부에 앞서 실질심사를 받 기 위해 법정으로 가면서 한 말이다. 법관을 대면해서는 한 옥타브를 더 높였다 ― “민주주의를 위해 그랬다.” 테러범이 내뱉 는 그렇고 그럴 말을 뭐 되짚을 일일까마는, 절묘하기로는 그날 이후 열린우리당의 하소연도 그 비슷한 음색이었다. “국민이 매를 들었다면 달게 받아야 하겠지만, 기회를 주시면 심기일전해서 열심히 일할 것”(염동연 사무총장), “한나라당이 싹쓸이하겠다고 호언장담하는데 솔직히 두렵다”(이광재 전략기획위원장)라던 이런 말, 저런 말의 귀를 모으면 선거전략이고 뭐고 다 물건너 갔으니 그저 봐달라는 동정 동냥이었다
그렇다. 그날로 선거는 끝났다(는 사실을 열린우리당은 직감으로 알고 있었던 것이다).
테러범이 벤 것, 거듭 돌이켜 그것은 과연 무엇인가. 박 대표의 얼굴 바른 쪽이 아니라 열린우리당의 그른 열망이다. 병서 ‘36 계’를 뒤져 그 엇비슷한 장면을 찾으면 제3의 계 ‘차도살인(借刀殺人)’쯤이다 ― 남의 칼을 빌려 적을 벤 것이다. 테러범의 커터로써 결국 정적을 베었다는 식으로만 볼 것은 아니다. 우군 까지 벨 수 있고 또 베어야 차도살인의 계답기 때문이다. 차도살인은 우군의 힘을 빌려 적군을 물리침으로써 우·적(友敵)의 힘을 모두 소진시킨 뒤 스스로 그 쌍방을 제압하고 평정하는 계책이라지 않던가.
테러범의 커터 날이 허공과 얼굴을 함께 벤 직후 오세훈 서울시 장( 당시 후보, 지금 당선자)에게 상처를 보여준 뒤 병원에 간 박 대표는 응급실에 도착, 얼굴을 손으로 감싸고 고개 숙여 걷던 다급한 순간에 경호원들이 점퍼로 가리려 하자 이런 말로 사양 했다 ― “괜찮다.” 유정복 비서실장에게는 약간 길게 얘기했다 ― “얼마나 놀랐는가”. 수술 때도 그랬다. 전신 마취를 해야 한다는 의료진 권고를 물리치고 국소 마취를 고집하며 같은 호흡으로 말했다 - “의식을 잃기 싫다.” 첫 실밥을 뽑던 날, 진료과 정에서 생명이 위험할 수 있었다는 의료진 설명에는 제법 긴 말 에 웃음을 섞었다 ― “다칠 때는 그렇게 위험했는지 몰랐다.”
우군에게 우선 칼이 무엇이고 상처가 어떤지 보여준 뒤 그 얼굴 을 가리기도, 의식잃기도 싫다는 박 대표를 앞으로 누군가가 ‘ 유신의 밤거리를 배회하는 공주’쯤으로 깎아내리자면 커터의 날과 그날 5·20을 기억하라는 핀잔 정도는 각오해야 할 판이다. 이명박 서울시장, 손학규 경기지사 등 우군 부장(副將)들을 줄줄이 병실 앞을 오가게 하더니 그로써 대선주자 선호도를 바꿨다. 당외 고건 전 총리까지 버금으로 돌리는가 싶었다. 역시 차도살인 의 내공이다.
지난달 11일 한나라당이 미리 밝힌 박 대표의 대표직 사퇴예정일은 6월16일, 11일 남았다. 당헌·당규에 따라 대통령선거일 18개월 전에 물러나도록 돼 있는 만큼 사퇴 시한은 6월18일이다. 그 러나 그날이 일요일이라 금요일로 이틀 앞당길 만큼 박 대표의 시선은 내년 12·19 대선 너머까지 가닿았음을 지켜보며 36계의 또 다른 칼날 계책을 마저 펴본다. 제10계 소리장도(笑裏藏刀) ― 웃음으로 칼날을 감춘다, 기다려온 그날이 올 때까지.
[[홍정기 /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