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10 김인문.김양 묘
무열왕릉을 들리기전에...
김인문 묘(경북 기념물 제32호)
김인문은 신라 무열왕의 둘째 아들이며 문무왕의 친동생으로 23세에 당나라에 가서 벼슬을 하다가 돌아와 무열왕을 도와
김유신 장군과 함께 삼국을 통일 하는데 이바지 하였다.당나라에서 말년을 보내다가 효소왕때 세상을 떠나자 나라에서 태
대각간(太大角干)이라는 관직을 추증하고 서라벌의 서쪽 언덕에 장사 지냈다. 1931년 서악서원에서 김인문의 비석을 발견
하여 이곳이 그의 무덤임을 확인 하였다.
경주 서악리 귀부(보물 제70호)
이 거북모양의 받침돌은 신라 태종 무열왕릉의 둘째 아들로 삼국통일에 큰공을 세운 김인문의 묘비를 세웠던 것이다.
받침돌에 있는 돌거북은 태종 무열왕 귀부의 모습과 비슷한 양식으로 네발로 힘있게 나아가면서 목을 앞으로 길게 빼
고 있다. 앞.뒷발의 발가락이 모두 다섯개인것이 다를뿐 기교면에서 무열왕비의 귀부와 쌍벽을 이루고 있으며 목에 새
겨진 다섯가닥의 목주름은 사실적이면서도 자연스럽다. 거북의 등에 새긴 큼직한 육각무늬 역시 조각솜씨가 뛰어나며
등 주위에 구름무늬를 새긴것과 그 바깥쪽에 구슬을 꿰놓은듯한 무늬를 돌린것은 독특하다.
몸통과 머릿돌은 없어졌는데 1931년 서악서원에서 비석조각이 발견되어 국립 경주박물관에 전시되 있다.
김양(좌) 김인문(우)묘
김양(金陽. 808~857)의 무덤은 무열왕릉 동쪽에 김인문 묘하고 나란히 위치해 있다. 김양은 무열왕의 9세 손으로 여러
벼슬을 지내면서 나라에 공헌 하였으며 신무왕이 된 김우징을 도와 민애왕의 뒤를 잇게 하였고 다음왕인 문성왕도받들
었다. 그후 헌안왕때 김양이 세상을 떠나자 대각간을 추증하고 무열왕릉 곁에 장사지냈다고 한다.
<인터넷 자료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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