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0 국회의원 재보선 결과
새누리당 화성갑 서청원.포항 남.울릉 박명재 후보 당선.
당선인 서청원.
돌아온 '노병' 서청원..숨죽인 새누리
롤러코스터 정치역정…7선 고지 올라
범여권 새 구심점 주목…'기대반 우려반'
(서울=연합뉴스) 안용수 기자 = 여권의 친박(친박근혜) 원로로 꼽혀온 서청원 전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대표가 정치적 부활에 성공했다.
공천 단계에서 불거진 새누리당 일각의 '안티' 여론을 뚫고 10·30 경기 화성 보궐선거에서 당선돼 국회로 돌아왔다.
올해 고희(古稀)를 맞은 그는 7선이 되면서 새누리당 정몽준 의원과 함께 19대 국회 최다선 반열에 서게 됐다. 범여권에선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 강창희 국회의장과 함께 '3두마차'가 될 것이라는 얘기가 '기대반 우려반'으로 벌써부터 회자될 정도로 그의 존재감은 커보인다.
서 의원은 지난 1981년 국회의원 배지를 처음으로 단 이후 30여년 정치사를 목도한 노정객이다.
롤러코스터를 탄듯 정치적 부침을 겪어 '풍운아'라는 별칭이 붙었다.
서 의원은 중앙대 총학생회장 시절 박정희 전 대통령이 한일회담 반대 시위를 진압한 6·3 사태 당시 시위를 주도해 투옥됐다.
신문기자로 활동하다 1981년 11대 총선에서 서울 동작에서 민한당 소속으로 첫 당선됐으나 12대 총선에서 낙선했다.
그런 그를 정치적으로 성장시킨 인물이 김영삼 전 대통령이었다.
12대 총선에서 야권 정치인 중심으로 창당된 '신민당 돌풍'을 목격한 서 의원은 1985년 '김영삼계'와 '김대중계'의 야당 인사들이 연합해 구성한 재야정치단체인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에 들어갔다.
'YS키즈'로 상도동계 정치인으로 자리매김한 후 1992년 대선에서 김영삼 대통령이 당선되는데 선봉에 섰고, '김영삼 정부'에서 정무제1장관과 신한국당 원내총무를 맡으며 핵심 실세로 부상했다.
지금의 원내대표에 해당하는 원내총무 시절 그는 여야간 대화와 타협을 끌어내는 협상력을 과시했으나 '김영삼 정부'의 레임덕을 재촉한 것으로 평가되는 1996년 12월말 노동법안 기습처리는 오점으로 지적되기도 한다.
그의 정치행로는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등장과 더불어 변곡점을 맞는다.
1996∼1997년 당시 여권의 권력지형이 이 전 총재의 중심으로 재편되는 과정에서 그는 1997년 대선을 앞두고 '반(反) 이회창' 전선에 서기도 했다.
그러나 2002년 이 전 총재가 대선에 재도전할 때에는 한나라당 당대표로서, 대선선대위원장을 맡아 적극적으로 협력하기도 했다.
서 의원의 정치적 험로는 두 차례에 걸친 '대통령 만들기'와 관련이 깊다.
그는 이회창 전 총재가 2002년 대선에 패배한 후 2004년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가 풀려났다.
2007년 대선을 앞두고는 당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를 지지했다.
당 대선후보 경선을 앞두고 '박근혜 캠프'의 상임고문을 맡아 당시 이명박 후보의 도곡동 땅 논란을 점화시키는 등 치열했던 경선전을 지휘했으나 박 전 대표가 패하면서 또한번 고배를 마셨다.
2008년 18대 총선에서 친이(친이명박)계에 밀려 친박(친박근혜)계가 줄줄이 공천에 탈락했을 때 그는 탈당 후 '친박연대'를 창당했다. 급조된 정당이었지만 예상을 뒤엎고 자신을 포함해 14석을 얻어내는 저력을 과시했다.
그러나 공천헌금 수수혐의로 2009년 다시 수감되는 처지가 됐고 수형과 행집행 정지를 반복하다 2010년 성탄절 특사로 풀려났다.
당시 그에 대해서는 정계복귀가 불가능할 것이라는 전망이 대체적이었다. 본인 스스로 국회의원직 재도전 가능성은 희박함을 암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박근혜정부가 출범하면서 정권재창출의 일등공신인 그가 정치적 재기를 도모할 것이란 관측이 많았고, 실제 현실로 이어졌다.
그의 컴백으로 당내 역학구도의 재편은 불가피한 흐름이 될 전망된다. 지난 4월 재보선에서 5선에 성공한 친박 좌장 출신의 김무성 의원이 그와 경쟁관계를 형성할 것이라는 관측이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부인 이선화(69)씨와 1남 1녀.
▲충남 천안(70) ▲중앙대 정외과 ▲조선일보 기자 ▲11.13.14.15.16.18대 의원 ▲통일민주당 총재비서실장 ▲정무1장관 ▲신한국당 원내총무 ▲한나라당 사무총장·대표최고위원 ▲친박연대 공동대표 ▲새누리당 상임고문
당선인 박명재.
10·30 재·보선을 통해 금배지를 단 박명재 의원은 '노무현 정부'에서 행정자치부 장관을 지낸 정통 관료 출신이다.
30여년 중앙과 지방정부에서 두루 쌓은 행정경험을 바탕으로 정치인으로 변신에 성공했다.
행정고시(16회)에 수석 합격해 옛 총무처를 시작으로 공직에 첫발을 내디딘 후 경북도 행정부지사, 행정자치부 기획관리실장, 중앙공무원교육원장 등을 두루 거치면서 공무원 조직·인사 분야에서 전문성을 쌓았다.
스킨십이 뛰어난 편으로 선출직 도전이 일찌감치 예상돼 왔다.
지난 2006년 5·31 지방선거에서는 열린우리당 후보로 민선 경북지사 선거에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이어 '노무현 정부'의 마지막 행정자치부 장관을 지냈다.
2012년 4월 19대 총선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경북 지역에 출마하려 했지만 전임 정부에서 봉직했다는 전력에 발목을 잡혔다. 이 때문에 당시 새누리당 입당이 거부되자 무소속으로 선거 출마를 강행했으나 고배를 마셨다.
이런 우여곡절을 거친 끝에 새누리당에 작년 8월 입당했다.
이번 재·보선 공천을 앞두고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미(未)이관 파문이 일면서 당시 주무부처 장관으로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박 의원은 "참여정부의 대통령기록물 봉하마을 유출에 반대했다"는 발언으로 논란을 정면 돌파하는 방법으로 공천 승부수를 던졌다는 지적을 받았다.
행정분야 전문성을 인정받아 2009년부터 3년간 차의과학대 총장을 지내기도 했다.
박 의원은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중앙과 지방에서의 행정경험을 살려 박근혜정부를 작지만 효율적인 조직으로 만드는 데 기여하겠다"면서 "특히 국민의 재난안전 분야에서 적극 활동하겠다"고 향후 의정활동의 포부를 밝혔다.
부인 장광복(58)씨와 2남1녀.
▲경북 포항(66) ▲ 중동고·연세대·네덜란드 국립사회과학대학원 ▲ 총무처 조직기획과장 ▲ 대통령 행정비서관 ▲ 행자부 기획관리실장 ▲ 경북도 행정부지사 ▲중앙공무원교육원장 ▲행정자치부 장관 ▲차의과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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