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5 양의 탈을 쓴 악마들.
이런부류들 김정은이한테로 추방시킬 방법은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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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정구사 신부들은 해방신학 신봉하는 마르크스주의자들
1. 해방신학이란?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을 정의롭지 못한 정치, 경제, 사회적 조건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측면에서 이해하고 실천을 강조했던 기독교 신학 운동이다. 1960년대 라틴 아메리카를 중심으로 시작되어, 가톨릭 신학자들이 주도하고 진보적 개신교 신학자들이 참여함으로써 초교파적인 운동으로 발전하였다. 빈곤한 사람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의 입장에서 교리를 해석함으로써 교회가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불평등과 부조리로부터 이들을 해방시키는 사회참여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특히 빈곤을 신의 뜻에 어긋나는 사회적 죄악으로 규정하고 이를 타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회의 사회참여를 강조한 해방신학적 관점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65년)와 콜롬비아 메데인에서 열린 제2차 라틴아메리카 주교회의(1968년) 후 라틴 아메리카에서 본격적으로 발전하였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빈곤한 국가가 부유한 국가에 종속되는 세계적인 문제를 지적하고, 교회가 인류·역사와의 유대에 따라 그런 문제에 공동의 책임을 져야 한다고 천명하였으며, 메데인 주교회의에서는 이에 대한 공식적이고 구체적인 논의가 이루어졌다. 이후 해방신학은 1970년대와 1980년대에 걸쳐 지속적으로 발전하였다. 세계교회협의회(World Council of Churches, WCC)는 방콕대회(1972)와 나이로비 대회(1975)에서 해방신학을 “WCC의 신학”으로 채택하기도 했다. 그러나 로마 교황청에서 1984년과 1986년 두 차례에 걸쳐 해방신학과 마르크스주의 이데올로기 사이의 연관성을 우려하는 경고 문건을 발표한 이후, 영향력이 줄어들었다.
해방신학이 라틴 아메리카를 중심으로 발달한 데는 지역적인 특수성이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라틴 아메리카는 15세기부터 19세기 초까지 스페인과 포르투갈 등에 의한 식민통치를 받았고, 독립 후에도 군사독재가 지속되면서 고질적인 빈부격차와 극심한 사회적 불평등에 시달렸고 부패와 부조리가 만연했다. 말하자면 해방신학은 라틴 아메리카 지역의 경제, 사회적 불평등과 부조리에 대한 교회의 도덕적인 반응에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라틴 아메리카 인구의 대다수가 가톨릭교도라는 점도 이 지역에서 해방신학이 태동하여 발전하는 데에 밑거름이 되었다.
2. 라틴 아메리카 해방신학의 탄생 배경
라틴 아메리카 해방 신학은 여러 영향 속에서 형성되었다.
그 첫 번째 영향은 교회는 인간의 존엄성을 높이고 사회구조를 인간적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사회적 가르침이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영향 속에서 1968년 라틴 아메리카의 주교들은 콜롬비아의 메델린(Medellin)에서 열린 제2차 남미 주교 모임에서 교회의 중요한 사명 중 하나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가난한 자들의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존중히 여기고 구조화된 사회악을 비판하며 극복하는 데 있다고 선포하였다. 해방 신학은 이 메델린 회의에서 1979년 푸에블라의 제3차 남미 주교단 회의까지의 약 11년 사이에 비약적으로 발전하였다.
해방 신학의 형성에 영향을 준 두 번째 요인으로는 1960년대 이후 서독에서 일어난 정치 신학(political theology)을 들 수 있다. 위르겐 몰트만(Jurgen Moltmann), 요한 벱티스트 메츠(Johann Baptist Metz), 도로테 죌레(Dorothee Soelle) 등 제2차 세계대전을 몸으로 겪은 젊은 신학자들은 나치 독일의 등장과 유대인 대학살(Holocaust)이 일어난 이유는 독일의 교회와 신학이 복음을 너무 개인주의적으로 이해해서 정치적인 보수 반동주의를 정당화했기 때문이라고 비판하면서 기독교 복음의 정치적 책임성을 강력하게 주장하였다.
이 중 몰트만은 예수가 선포한 하나님의 나라는 정치적 요소를 그 안에 품고 있기 때문에 올바른 정치적 선택과 결단을 하는 것 역시 신앙의 본질이라고 외쳤다. 또한 메츠는 예수의 십자가 죽음은 로마의 억압구조에 대한 예언자적 항거의 죽음, 곧 정치적 죽음이었고, 이 죽음은 불의한 정치체제를 위협하는 위험한 기억(the dangerous memory of the death of Jesus Christ)이며 교회는 이 위험한 기억에 의해 형성되고 그것에 의해 살아가는 공동체이기 때문에, 교회의 삶은 고난당하는 이들과의 연대 속에서 잘못된 정치구조에 대한 비판과 저항으로 특징지어지는 정치적인 삶이어야 한다고 하였다. 해방 신학은 이런 독일의 정치 신학을 받아들이되 그것을 그들의 상황 안에서 더욱 철저화시켰다.
해방 신학의 형성에 미친 세 번째 주요한 요인으로 칼 마르크스의 사상을 들 수 있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발전할수록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의 빈부 격차는 더욱 커지고 노동자들은 그들의 노동에서 소외되어 비인간화된다고 하였다. 따라서 그는 자본주의에 의해서는 부의 균등한 분배로 인한 인간적 삶이 이루어지지 않으며, 현실 변혁은 프롤레타리아의 단결된 힘에 의한 혁명 외에는 없다고 가르쳤다. 해방 신학자들은 1950년대와 1960년대의 미국의 후원에 의한 개발 독재의 시기가 더 큰 빈부 격차를 낳은 것을 보면서 마르크스의 이런 사회 비판을 받아들인다.
곧 이들은 남미의 정치적 억압과 사회·경제적인 수탈을 극복하는 길은 미국식 자본주의가 아닌 사회의 총체적 혁명, 곧 해방의 길이라고 본다. 하지만 이들은 마르크스주의를 자본주의 체제를 비판하고 새로운 사회 질서를 모색하는 수단으로 받아들일 뿐 다른 부분–가령 무신론–을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해방 신학의 주요 신학자들로는 구스타보 구티에레즈, 얀 소브리노(Jon Sobrino), 레오나르도 보프(Leonardo Boff), 이그나시오 엘라꾸리아(Ignacio Ellacuria), 호세 미란다, 호세 꼼블린(Jose Comblin) 등을 들 수 있다.
3. 해방신학은 마르크스주의다!!!
해방신학은 기독교의 옷을 입은 공산 마르크스주의다.(Liberation Theology is Marxism in Christian Dress.) 무신론 공산주의 적그리스도의 사상이 기독교의 탈을 쓰고 라틴 아메리카, 아프리카, 아시아 지역 등 개발도상에 있는 제3세계의 나라들과 서방자유주의 선진 공업국가들에도 깊이 침투 부식하고 있다. 불행하게도 정치적 민주주의, 경제적 자본주의를 지향하여 나아가는, 반공을 국시로 하는 자유 대한민국에도 최근에는 해방신학의 독소가 침투하여 종교단체, 언론기관, 대학생층을 위주로 한 학원가, 공장의 노동자들, 농어촌의 농어민들 등 사회 각계 각층에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듯 깊이 부식하여 조국의 안보와 사회의 안녕 질서에 큰 타격을 주고 있다.
특히 배교와 불신앙으로 타락한 자유주의 교회들의 연합단체인 세계 교회 협의회(WCC)는 해방신학을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그들의 산하 교회들에게 주입시키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WCC 정회원 교단이 셋이 있다.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측=장로회신학대학 계통), 대학기독교장로회(기장측=한국신학대학 계통), 대한기독교감리회(기감측=감리교신학대학 계통) 등이다.
4. 우리나라 해방신학 신봉자들은 종북이다.
우리나라에서 마르크스주의를 주창하는 특히 천주교 정구사신부들은 종북이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순수 마르크수주의를 부루짓는 인간 있냐?
5. 천주교 정구사 신부들의 실체적 진실
(1) 어쩌다 한국천주교가 이리되었盧?
한국천주교는 해방신학을 신봉하는 좌파신부단체 정의구현사제단이 다수를 차지하여
신자들이 신부를 걱정하는 지경에 빠졌다.
(2) 정의구현 사제단의 실태
[1] 고 김수환 추기경의 비난하고 여신도를 추행하는 하극상의 폐륜 집단임
이들은 ‘국가보안법폐지국민연대’ 명단에 공식적으로 이름을 올렸다.
정의구현사제단의 함세웅 신부는 과거 광우병 촛불집회 당시 국민들에게 자제를 권했던
고 김수환 추기경에게 “촛불집회는 장엄한 기도였다”며 “김수환 추기경의 사고는 시대착오적이다. 시대의 징표를 제대로 읽지 못했다.”고 비난했다.
고 김수환 추기경은 국가보안법 폐지에 반대하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추기경은 교황에 다음가는 직위로서 교황의 선거권을 지니며 교황이 직접 자문을 구하는 대한민국의 최고위 사제이다. 당연히 평사제보다 직급이 높음에도 이들은 공개비방을 서슴치 않았다.
(중략)
정의구현사제단 소속으로 원주교구에서 근무한 A신부는 두 차례 방북한 전력을 가지고 있다.
2004년에는 언론개혁법안 350인 선언에 이름을 올리며 정치에 활발히 개입했다.
그러나 A신부는 신자들로부터 ‘종교인으로서는 낙제’라는 평가를 사고 말았다.
GTB 강원민방은 피해자 인터뷰를 통해
“A신부가 2001년부터 2006년까지 수차례에 걸쳐 같은 교구의 여신도들과 성관계를 맺었다”고 주장했다.
강원민방은
“A신부가 성관계를 맺은 신도 중에는 A신부가 일하던 복지시설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여대생도 있었다”며
“피해자가 반항했지만 A신부가 성폭행한 뒤 알몸 사진도 찍었다”고 보도했다.
이어 성당 관계자의 목격담을 인용하며
“여신도와의 부적절한 관계가 성당 사제관에서 이뤄졌다”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중략)
정의구현사제단은 1974년 발족 후 1987년까지는 지금과 같은 성향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러나 1989년 ‘민족통일을 향한 우리의 기도와 선언’을 발표하며
“민족의 삶에 배치되는 군사동맹 해체”와 “주한미군의 단계적 철수”를 주장한 것을 시작으로
“미군이 물러가는 진정한 민족통일의 그날까지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정의와 평화로 결단한다”며 '자주','민족','평화'등의 단어로 대표되는 NL성향을 보였다.
이후 간첩 송두율의 석방운동을 주도했으며 함세웅 신부는 자신이 이사장으로 있는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를 통해 구속수감 중에 있던 송두율에게 ‘제3회 안중근평화상’을 수여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전국을 마비시킨 광우병 촛불시위를 주도하는가 하면
천안함 폭침이 북한의 소행으로 밝혀지자
“명확한 증거의 공개와 국제적 공인이 없는 섣부른 결론”이라고 주장하고,
제주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하며 단식기도회를 열었다.
이렇듯 정의구현사제단은 종북 성향을 보이는 정치참여와 여신도 성폭행 의혹 등 도덕성 문제로 비판을 받아왔다.
세계 현대사에 유래가 없는 3대 세습독재와 인권탄압을 일삼는 북한을 옹호하고,
사제복을 입고 여신도를 성폭행하는 등 ‘정의구현’과는 거리가 있는 이들의 언행에 신자들은 실망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후 생략)
(참고) http://www.bluetoday.net/news/articleView.html?idxno=3187
[2] 정진석 추기경을 향해서도 막말
이후에도 정의구현사제단은 정진석추기경을 향하여
“미움이나 부추기는 골수 반공주의자의 면모를 과시하니 교회의 불행”이라고 거칠게 정 추기경을 비난하는가 하면
“당신이 사목적(司牧的) 혜안을 과감하게 포기했거나 아예 갖추지 못했음을 스스로 인정해버리는 선언”이라며 막말까지 했을 정도임.
당시 평신도 인터넷저널에
“내 나이 70 평생 천주교회 안에서 장상(長上)께 이렇게 온갖 못된 말을 함부로 써서 대드는 짓을 본 일이 없다”는 글까지 올라옴.
(참고) http://news.donga.com/Column/Sasul/3/040109/20101213/33243629/1
[3] 주교회의 인준도 받지 못한 카톨릭내의 불법단체임
천주교 평신도들의 모임인 ´한국천주교나라사랑기도회´(지도신부: 김계춘 도미니꼬)는
2010년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은 한국 천주교회를 떠날 것”을 촉구했다.
이들은
“우리 신도들이 바라는 것은 단지 딱 하나,
정치적인 발언을 하려면 사제복을 벗고 성당 밖에서 해달라는 것 뿐”이라며
“좌파적 이념전파를 지속하려면 로만칼러를 벗고 정치로 나서는 게 옳은 선택일 것”이라고 충고했다.
이들은
“반교회적 정치놀음을 중단하고 성전으로 돌아오라는 평신도들의 호소를 무시한 채 여전히 지속하고 있다”며
“이제 이들을 교구법정와 교황청 법정에 고발하기 위해 참여할 때”라고 밝혔다.
정구사를 ‘주교회의 인준을 받지 않은 불법단체’로 규정한 이들은,
“교도권을 무시하고 교구장에 불순명하며 사회 각 분야의 전문가를 무시하며 신앙교리인 양 호도하며 교회법을 위배하는 행동을 하고 있는 이들은 교회를 떠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참고) http://www.konas.net/article/article.asp?idx=23903
[3줄요약]
1. 주교회의 인준도 받지 않은 카톨릭 내부의 불법단체임.
2. 카톨릭 내에서도 천주교를 떠날 것을 종용받는 악질 세력임.
3. 김일성을 교시를 따르고 여신도 추행하는 등 신부를 가장한 악질 좀비에 지나지 않음.
출처: http://www.ilbe.com/1737415714
(3) 그들의 임무는 어린 양을 구하는게 아니고 양아치같이 길거리 투쟁이 임무
(4) 정구사 신부섹휘들, 정치할려면 옷벗고 당당하게 해라!!!
그게 정답이다!!!
(5) 정의구현 사제단.. 이제보니까 추기경한테도 막말을 일삼는 놈들이네
http://www.konas.net/article/article.asp?idx=23903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추기경이 12월8일 기자간담회에서 4대강사업과 북한 현실에 관해 의견을 개진하였다. 그러자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하 정구사)이 10일 성명을 발표, ‘추기경의 궤변’이라며 반박하고 나섰다. 이어 13일엔 함세웅 신부 등 정구사에서 활동 중이거나 은퇴한 신부 13명이 기자회견을 갖고 정 추기경은 “용서를 구하고 용퇴의 결단으로 그 진정을 보여주기 바란다.”며 사퇴하라고 압박했다.
돌이켜 보건데 지난 3월 천주교 주교회의는 성명을 통해 ‘4대강 사업이 자연환경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힐 것으로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다.’며 ‘우려’를 표명하였다. 이 성명과 관련해 정 추기경은 12.8 기자간담회를 통해 “주교회의의 결정은 4대강 사업이 자연파괴와 난개발의 위험이 보인다고 했지, 반대한다고 한 것은 아니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정구사는 10일 대뜸 성명을 통해 “추기경의 궤변”이라고 반박하고 나선 것이다. 3월의 “주교회의는 전문가들의 다양한 견해를 경청하고 깊이 논의한 끝에 주교단의 이름으로 결론을 내놓았는데 추기경은 주교회의의 분별력을 경시하고 판단행위마저 부정한 것”이라고 뒤틀었다. 더 나아가 이 성명은 “이렇게 노골적으로 정부를 편드시는 남모르는 고충이라도 있는 것인지 여쭙고 싶다.”며 정 추기경을 정부의 앞잡이로 몰아가는 듯한 인상을 금치 못하게 하였다. 뿐만 아니라 정구사와 맥을 같이하는 13명의 신부들의 12.13일 기자회견은 정 추기경의 사퇴까지 들먹였다. 이러한 정구사 사제단의 분별없는 행동은 이 나라의 양심이요, 어르신으로 존경받는 추기경에 대한 모독이며 천주교단에 대한 도전이다.
정구사의 12.10 성명과 12.13 기자회견은 물질적 세력 다툼에 빠진 정략배의 상대편 죽이기 式 난투극을 연상케 한다. 더욱이 12.10 성명은 그것으로 그치지 않았다는데서 경악을 금치 못하게 한다. 정 추기경이 북한의 실정(失政)에 대해 개탄한 대목에 관해서도 상식 밖의 용어를 사용하며 사퇴까지 요구했다.
정 추기경은 북한에 대해 “북한은 국민의 생존에 대해 양식(糧食)이 없다고 손을 벌리고, 진리를 차단하고 자유가 없다.”며 사실을 사실대로 적시하였다. 이에 정구사는 “추기경이 (북한에 대한) 미움이나 부추기는 골수 반공주의자의 면모를 과시하고 있으니 이는 교회의 불행”이라고 맞섰다. 이는 정 추기경을 자신들의 좌편향 코드로 길들이기 위한 천박한 공세로 여겨진다.
정 추기경이 천주교 사제로서 종교를 탄압하고 백성을 굶겨 죽이는 북한 공산독재 권력을 비판하는 것은 종교인으로서 당연한 책무이다. 로마 카톨릭 교황 베네딕토 16세도 철저한 반공주의자이다. 그렇지만 전 세계 카톨릭 사제들은 물론 일반 신도들도 교황을 일컬어 "골수 반공주의자"이고 "교회의 불행“이라며 폄훼하지 않으며 ”궤변“이라고 막가지 않는다.
유독 한국의 정구사만 인권과 자유의 사각지대인 북한의 편에 서 있다. 이는 정구사 사제들이 아직도 “골수” 친북으로 기울어져 있음을 반영한다. “공화국 인민들은 장군님의 품에 안겨 쌀밥과 고기국을 먹으며 행복하다.”고 치켜세웠어야 옳다는 말인지 되묻고 싶다. 정구사는 북한의 김정일 독재자의 말에 대해서는 “궤변“이니 하는 따위의 거친 말 한 마디 못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정구사 소속 한 신부는 북한에 밀입국하여 북한을 찬양하거나 주한미군 철수를 외치는 등 대한민국의 실정법을 어기면서 친북작태를 일삼은 예가 없지 않았다. 정구사가 그런 ”골수“ 친북사고에 빠져있지 않고서는 정 추기경을 “골수 반공주의자”라고 비난 할 수 없다.
6년 전 정구사 고문을 맡고 있던 함세웅 신부는 김수환 추기경이 노무현 정권의 친북좌편향 행태를 비판했을 때도 김 추기경에 대든 적이 있었다. 김 추기경은 노무현 정권 시절 “반미친북으로 가는 것은 위험하다.” “탄핵문제로 국론이 분열되어서는 안 된다.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차분하게 기다려보자”고 호소하였다. 반미친북과 노 대통령의 국회 탄핵을 반대하는 시위를 조장해서는 안 된다고 호소한 것이다. 그러자 함 신부는 “김 추기경의 참으라는 말씀은 불의의 독재시대에 권력자들이 늘 하던 표현”이라며 “김 추기경의 사고는 다소 시대착오적이라고 판단된다.”고 막말까지 하였다. 이 또한 사제로서 추기경을 좌편향으로 길들이기 위한 것이었다.
정구사에서 활동 중인 신부는 2008년 기준 전체 4,100여 명 중 500여명에 불과하다. 이 사제단은 1974년 당시 원주 교구장 지학순 주교가 유신헌법 무효를 선언하고 구속되자 그의 석방과 민주화 운동의 일환으로 출범하였으나 그 목적의 순수성으로 인해 국민적 지지도 받았다.
하지만 1980년대 말부터 좌편향 통일운동으로 빠져든 것이 문제였다. 그 후 이 사제단은 국가보안법 철폐, 주한미군철수, 대북경제지원 촉구 등 친북좌편향 언행을 감추지 않는다. 심지어 절대적 순종을 교리의 원칙을 삼고 있는 사제들이 오만방자하게도 김수환 추기경에 이어 정진석 추기경에까지 좌편향 길들이기를 하고 있으니 개탄해 마지않는다. 인간의 영적 구원을 인도하는 경건한 사제가 아니라 세력다툼에 빠진 속세 무리를 떠올리게 한다. 국가적 망신이 아닐 수 없다.
천주교 교회법은 특정 정치적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정치활동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정치활동을 하려면 사제직을 떠나야 한다. 정치와 현실 이념문제에 간여 하려면 북한의 비민주적인 인간 탄압에 대해 먼저 따지고 억압받는 북한 주민들을 위해 순교해야 마땅하다. 정의를 내 세우며 그 정의를 파괴하고 있는 사제단은 교단의 갈등과 국민 분열을 가져오는 행동을 중단하고 사제 본연의 자세로 되돌아 갈 것을 촉구한다. 400만 신도들이 숭모하는 추기경에게 “시대착오적이다”, “골수 반공주의자”, “궤변”, “사퇴하라”며 정치적 색깔을 드러내고 막가려면 사제 옷을 벗어야 한다. 그것만이 자신들의 말대로 “교회의 불행”을 막는 길이다.(konas)
정용석(단국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
(6) 정의구현사제단 박창신 신부, 종북세력 옹호발언과 연평도 포격 도발 감싸는 발언 파문
박신부는 이어 "NLL은 UN군 사령관이 그어놓은 것으로 휴전협정에도 없으며 북한과 아무 관계가 없다"고 강조했다.
박 신부의 이 같은 발언은 NLL과 연평도 포격 도발에 대한 북한의 주장과 일치한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또한 박 신부는 "박근혜 대통령은 대통령이 아니다"라며 사퇴를 촉구하기도 했다. 이에 청와대는 아직까지 공식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지만, 일부 시민단체들이 박 신부를 규탄하며 있을수 없는 발언이라며 성명서를 내고 있다.
선진화시민행동 박찬우 사무총장은 “지지율이 50%가 넘는 대통령을 향해 사퇴하라는 주장은 대선불복을 넘어 50%가 넘는 국민들을 무시하는 발언으로서 국민적 저항을 맞게 될 것입니다. 오늘은 연평도 포격 도발 3주년을 맞는 날입니다. 북한의 도발이 아직도 멈추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해서는 안될 발언을 했습니다.”고 했다.
http://www.upkorea.net/news/articleView.html?idxno=27355
6. 참심부 이태석신부님이 일부 신부섹희들 노는거 보고 지하에서 통곡할것
현대 사회는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가 물질주의라는 병을 앓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문제는 그 병 자체가 아니라 개인이나 사회가 그 병을 앓고 있다는 것을 모른다는 데에 있다. 이 무지는 콜레라처럼 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 가기 때문이다. 의식도 하지 못한 채 병적으로 생명보다 물질에 더 가치를 부여하는 현대의 질병은 지금도 어느 곳에서 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 가고 있으리라 생각하니 남의 일 같지 않다.
‘원수 같은 가난이 사람을 이렇게도 비참하게 만드는구나.’라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지금도 그 이 일을 생각하면 대상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화가 치밀어 오른다. 인간의 기본적인 인권조차 보장해 주지 못하게 하는, 나눔의 정신이 부족한 이기주의적인 사회 구조가 그 ‘화’의 대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빈貧만 있고 부富가 없는 이곳은 말 그대로 빈부의 차가 없는 곳이다.
‘없는 것이 없는’ 한국과는 반대로 이곳은 말 그대로 ‘있는 것이 없는’ 곳이다. 옷과 신발이 부족해 벌거벗고 맨발로 다니는 아이들도 많고 부시 마을 안으로 들어가 아이들에게 사탕을 주면 생전 처음 보는 사탕을 어떻게 먹어야 할지 몰라 껍질도 벗기지 않고 입속에 넣어 버리는 아이들도 쉽게 볼 수 있다. 화장실은 물론 화장지도 없다. 넓은 들판에 나가 뒤를 해결하고 마무리를 한다. 팬티라는 것도 모르고 부끄러움 별로 느끼지 않는다.
멋진 말로 사람들을 감동시킬 순 있어도 영혼을 감동시키거나 변화시키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영혼을 감동시키거나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오직 두 영혼의 진실한 만남을 통해서만이 가능하리라 생각된다.
-친구가 되어주실래요-에서
7. "신앙에 회의" 항의 빗발치자, 염수정 대주교 나서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대주교가 24일 정의구현전주교구사제단의 시국 미사와 관련, "사제의 직접적 정치 참여는 잘못"이라는 입장을 밝힌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교구장이 관할이 아닌 교구 일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꺼리는 천주교에서 염 대주교가 나선 것은 천주교계 전체가 엄청난 시국 미사 후폭풍에 휘말렸기 때문이다. 시국 미사의 발언 내용이 알려진 23일 전주교구는 물론 서울대교구 등 천주교 교구 홈페이지는 항의 댓글에 게시판이 폐쇄됐고, 교구청에는 항의 전화가 폭주했다. 서울대교구 관계자는 "'신앙에 회의가 온다'는 신자들의 하소연이 빗발치자 한국 천주교의 맏형으로서 서울대교구가 분명하게 선을 긋고 가야겠다고 결심하신 것 같다"고 말했다.
염수정 대주교는 서울 가톨릭대를 졸업하고 1970년 사제 서품을 받았다. 이후 여러 본당의 주임신부와 서울대교구 사무처장을 거쳐 2002년 서울대교구 보좌주교가 됐고, 2012년 6월 정진석 추기경의 후임으로 서울대교구장 대주교에 임명됐다.
염수정 대주교의 발언은 천주교계 안팎에 상당한 반향을 불러올 것으로 보인다. 우선 당사자인 정의구현사제단이 반발할 가능성이 높고, 평신도들의 입장 표명도 예상된다. 한국 천주교의 최고 지도 기구인 주교회의가 이와 관련해 어떤 자세를 보일지도 관심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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