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16 민애왕릉.희강왕릉.경덕왕릉
진덕왕릉 진입로를 찾지못해 지나쳤는데 두대리 마애석불 입상도 지나쳤다.
그리고 도착되는곳이 민애왕릉.희강왕릉이다.
민애왕릉(사적 제190호)
이능은 신라 제44대 민애왕(閔哀王 836~839.김명) 의 무덤으로 전해지고 있다. 높이 3.8m. 지름 12.6m로 원형 봉토분이다. 봉분 하단에는
1.6m 높이로 둘레돌을 돌린다음 반육각형으로 다듬은 지주석(支柱石)으로 받치게 하였다. 바로 앞에는 판석 2매로 만든 상석이 있다.
민애왕은 희강왕을 살해하고 스스로 왕위에 올랐다가 재위 1년만에 다시 김양에 의헤서 피살 되었다.삼국사
기에 반정왕으로서 피살되었지만 군신들이 왕의 예를 갖추어 장사 지내고 시호를 민애라고 한것으로 기록 되
어 있다. 1984년 왕릉 수리공사때 분구에서 원화 십년명(元和十年銘.815) 뼈단지(골호)토기가 발견되었기 때
문에 민애 왕릉이 아니고 헝덕왕의 앞시기 어느 왕의 능으로 추정된다.
희강왕릉 가는길...
희강왕릉(사적 제220호)
신라 제43대 희강왕(836~838.김재륭)을 모신곳이다.
이능은 얕은 구릉의 중간부분에 있으며 바닥면이 남북방향으로 약간 경사져 있다. 둘레14m 높이 2.8m로 흙
을 둥글게 쌓은 봉토분이며 일반 무덤에 비해 조금 클뿐 별다른 특징은 없다. 희강왕은 원성왕의 손자인데 흥
덕왕이 자식이 없이 죽자 조카로서 왕위 다툼을 거쳐 재위 하였으나 상대등 김명이 난을 일으키자 자살 하였
다. 삼국사기에 "소산(蘇山)에 장사 지냈다"고 기록 되어 있는데 소산이 어느산인지 확실하지 않다.
경덕왕릉(사적 제 23호)
이능은 신라 제35대 경덕왕(742~765. 김헌영) 을 모신 곳이다. 경덕왕은 효성왕의 친동생으로 왕위를 계승
하여 국가의 제반 제도를 중국식으로 개편하고 지방 제도를 완비 하였다. 굴불사와 불국사를 창건 하였으며
황룡사 대종과 성덕대왕 신종도 만들었다.
구릉 경사면의 흙을 편평하게 깍아 축조 했으며 흙을 둥글게 쌓아 올렸다. 맨아래에 지대석을 놓고 면석과
기둥역활을 하는 탱석을 교대로 세우고 탱석 두칸건너 하나씩 무인복(武人服)을 입고 무기를 든 십이지신상
을 돋을새김해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