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16 인용사지.월정교지.
- 인용사지
인용사<仁容寺>는 신라시대<新羅時代> 장군<將軍>이며 외교가<外交家>였던 김인문<金仁問>을 위해 신라사람들
이 세운 절이라고 전하고 있는데 그 터가 바로 이곳이라고 알려져 있다. 김인문은 신라 제29대 태종무열왕<太宗武烈
王>의 둘째 아들로 당나라에서 22년간 생활하면서 많은 벼슬을 했는데, 특히 660년에는 당나라 장수<將帥> 소정방
<蘇定方>과 함께 백제<百濟>를 병합<倂合>하고, 668년에는 고구려<高句麗>를 통합<統合>하여 신라가 삼국<三國>
을 통일<統一>하는데 크게 공헌<貢獻>하였다. 그는 당나라에서 죽은 후 시신<屍身>이 신라로 운구<運柩>되어 장사
<葬事>지내졌고, 태대각간<太大角干>으로 추증<追贈>되었다.
인용사지 발굴현장.
현재 절은 비록 없어졌으나 절터에 남아 있는 석물<石物>을 통해 볼 때 통일신라시대<統一新羅時代>의 전형적<典型的>인
석탑<石塔> 2기가 있었던 쌍탑식<雙塔式> 가람배치<伽藍配置>임을 보여주고 있다.
발굴현장 담장에 벽화.
화가는 없고...
- 월정교지
월정교지(사적 제457호)
이 다리터(橋址)는 통일 신라시대에 축조 되었던 월정교의 유지(遺址)이다. 월정교의 규모는 길이 60.57m로 발굴조사
때에 교각사이에서 불에 탄 목재편과 기와편이 출토된점으로 보아 교각 상면이 누각과 지붕으로 연결된 누교였을것으
로 추정되고 있다.
이 다리터는 우리나라 고대 교량의 축조방법과 토목기술을 보여주고 있을뿐 아니라 신라 왕경의 규모와 당시의 교통로
등을 연구 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월정교지 석재들...
석재 하나하나에 녹색 이름표(번호)가 하나씩 붙여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