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16  천관사지.재매정

 

 

...

 

사랑하였던 옛여인을 위해 세웠다는 천관사.

김유신 집터라고 전해지는 재매정. 

 

 

- 천관사지. 

 

천관사지(사적 제140호)

  김유신이 청년시절 천관이라는 기생을 알게 되었다. 어머니는 어느 날 아들을 불러 "이 어미의 소원이 있다면 네

할아버지와 아버지처럼 공을 세워 나라를 지키는 대들보가 되어주길 바랄 뿐이다. 그런데 너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느냐. 술집에 드나들며 천한 여자들과 허송세월만 보내고 있으니 장래에 무엇이 되겠느냐." 하고 꾸짖었다. 김유

신은 그 후 천관의 집에 발길을 끊고 심신 수련에 몰두했다. 어느 날 유신은 친구의 초대를 받아 술을 마시고 거나

하게 취한 채 말을 타고 오다 그만 잠이 들어 버렸다. 말은 저 혼자서 집으로 향했다. 바로 천관의 집이었다. 천관은

너무도 반가이 맞이했다. 그러나 잠에서 깬 유신은 맹세를 저버린 기막힌 사태를 깨달아 단숨에 칼을 뽑아 사랑하

는 애마의 목을 내리쳤다. 그 후 오랫동안 천관은 유신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천관은 그리움에 사무쳐 고민하다가

끝내 목숨을 끊었다. 김유신은 18살에 검술이 통하여 국선이 되었다. 660년에 백제의 항복을 받고 668년에는 고구

려의 항복을 받아내 삼국통일의 위업을 달성하게 되었다. 백발이 성성한 태대각간 김유신은 그제서야 사랑하던 천

관의 넋을 기리고자 천관사라는 절을 지어 천관의 극락왕생을 빌었다. 신라 최고의 화랑 김유신에게도 이런 사랑

이야기가 천관사터에 전해온다. 그러나 최근 천관여인은 기생이 아니라 국사에 참여한 신분이 높은 여자라는 논쟁

이 제기되고 있다. 일부 석탑재가 지금까지 그대로 방치돼 왔지만 최근 들어 국립 경주 문화재 연구소에서 천관사

터 발굴작업을 시작해 그 실체가 기대되고있다. 김유신의 집터가 있던 곳엔 당시의 우물터인 재매정이 남아있다.

김유신은 전장에서 잠시 돌아왔을 때 이 물을 마시며“물맛이 아직도 그대로구나”하며 전의를 다졌다는 이야기가 전

해온다. 화강석으로 네모나게 쌓은 건축기법은 첨성대 상단의 모습과 비슷해 학계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우물 안엔 아직도 물이 고여있다.

 

 

  이절터는 도당산 서쪽 기슭에 있으며 신라시대 김유신이 사랑하던 기생 천관(天官)의 집을 절로 바꾼 곳이라고

한다. 김유신은 어머니 만명부인의 엄한 훈계를 명심하여 함부로 남과 사귀지 않았지만 하루는 우연히 기생 천관

의 집에 유숙 하였다. 그러나 어머니의 훈계를 들은뒤 천관의 집에 들르지 않았다. 그후 어느날 술에 취하여 집에

돌아오던 길에 말이 이전에 다니던 길을 따라 천관의 집에 이르렀다.

  김유신이 잘못을 깨닫고 타고갔던 말의 목을 베고 안장을 버린채 돌아왔다. 훗날 김유신은 삼국을 통일한 뒤 사

랑하였던 옛여인을 위하여 천관의 집터에 절을 세우고 그녀의 이름을 따서 천관사라 하였다고 한다.

 

 

 

 

- 재매정.

 

 

 

 

 

 

  경주시 교동 89번지 남천 북쪽 기슭에 한 비각이 있으니 김유신 장군이 사시던 집터 재매정택 터다. 지금 남은

것은 김유신장군께서 마시던 우물하나 뿐이지만, 옛날에는 서라벌 35금입택(金入宅, 호화롭고 큰집)의 하나이던

큰 집이 있던 곳이다.

  644년(선덕13) 선덕여왕의 명령을 받은 대장군 김유신은 국경의 칠성(七城)을 섬멸하고 돌아오다가, 다시 적들

이 침입한다는 급보(急報)를 받고 되돌아 적진으로 진격하여 적군을 물리치고, 국경을 정비해 놓고 개선하니, 출

정한지 8개월만이었다. 8개월만에 그립던 서울에 돌아온 김유신은 식구들이 기다리고 있는 재매정택에도 들릴 새

없이 다시 적진으로 출정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김유신 장군은 군사들과 장비를 점검하고 적진으로 행군하는데

군대의 행렬이 재매정택 앞을 지나가게 되었다.

  오래 간만에 내 자식, 내 남편, 내 아버지 얼굴을 보려고, 그리운 식구들이 대문밖에 나와서 행렬을 바라보며 손을

흔들었으나 장군은 조금도 옆을 보지 않고, 앞만 보고 행군하였다. 군대 행렬이 자기 집을 다 지난 다음 장군은 말고

삐를 당기어 말을 멈추고 "우리집 우물에 가서 물을 한 그릇 떠 오라." 하고 부하에게 명령하였다. 부하가 뛰어가서

물을 떠오니 김유신 장군은 단숨에 한 그릇을 마시고 나서 "우리 집 물맛은 예나 다름없구나." 하며 크게 웃고 서쪽

으로 향해 말을 달렸다. 행군은 다시 시작되었다. 모든 장병들은 감탄하였다. "대장군께서도 전쟁에 나가는 마당에

식구들은 돌아보시지 않는데 우리들이 어찌 가족들과 이별함에 애타하리오." 하고 마음 든든히 진군하여 대승리를

거두었다.

 

이 우물의 물은 대장군께서 마시던 물이라 지금도 한 모금 마시면 기운이 왕성해진다 하는데...

마실수 있는 우물로 관리되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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