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21
이 영화는 아마 내가 고딩 때 학교에서 단체관람을 했던 영화가 아니었나 싶은데 혹은 내 기억이 틀릴 수도 있다. 아니라면 연애 시절에 고윤님하고 둘이 보러갔던 영화일 수도 있다. 하도 수십년 전의 영화라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폭풍우에 뒤집어진 여객선에 갇힌 승객들이 한 용감한 목사의 인도로 배의 상부에 있는 승객실에서 배의 밑바닥까지 거꾸로 올라가서 물 위에 드러나 있던 배의 밑바닥에서 구조되는 해피엔딩의 드라마를 그리고 있다. 도착한 구조대는 물 위에 떠 있는 배의 밑바닥을 망치로 두드려서 안의 생존자들을 확인한 후 산소용접기로 선체 바닥을 도려내어 생존자들을 구해낸다. 내 기억이 맞다면 대충 그런 결말이었지 싶다.
그런데 사실 배가 해상에서 사고를 당했을 때 배 안에 사람이 있는 채로 가라앉는 일은 극히 드물다. 왜냐하면 배라는 것은 부력이 있기 때문에 전쟁 중에 적의 어뢰를 맞는 경우 말고는 순식간에 가라앉는 일이 없다는 것이고, 특수한 경우가 아니면 아무리 심한 풍랑 속에서도 한번에 획 뒤집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이번의 세월호처럼 무리한 증축에, 과적을 하고 더군다나 서툰 항해사가 키를 잡았고, 거기다가 세계적인 조류 지역이었지만 배가 180도로 뒤집어지는데는 약 2시간이 걸렸다. 그러니까 선장과 승무원들이 적절하게만 조치했다면 승객들 대부분이 배에서 탈출할 시간은 충분했다는 것이다. 세계 최대의 해난사고로 일컬어지는 타이타닉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빙산과 충돌한 배가 두동강이가 나서 가라앉았지만 승객들은 대부분 배에서 탈출할 수 있었고 배에서 나오지 못한 채 갇혀서 죽은 사람은 거의 없었다. 워낙 해수의 온도가 차가웠기 때문에 바다에 뛰어내린 사람들 중 다수가 얼어죽었다.
배가 바다에서 사고를 당했을 때 승객들을 대피시키고 배에서 빠져나오게 하는 것은 선장의 책무다. 물론 승무원들도 공동의 책임이 있다. 해난 사고에서 구조대가 하는 일은 배에서 빠져나와 구명정을 탔거나 바다에 뛰어내린 사람들을 구조하고, 파도나 조류에 쓸려 멀리 떠내려간 사람을 수색하는 일이다. 사고 현장에서 해경이 하는 일이 그것이다. 해경이 평소에 훈련을 받는 내용도 그것이고, 그들의 구조 장비도 그런 일을 위한 것들이다. 배에서 아직 빠져나오지 못해서 선 내에 아직 사람이 있는 경우, 그들을 대피시킬 책임은 선장에 있고, 지휘권과 명령권도 선장에게 있다. 사고 현장에 해경이나 해군이 도착했다 하더라도 선내에 남아있는 승객에 대한 구조의 지휘는 백프로 선장에게 있지 해경청장이나 현장의 대책본부장이나 대통령에 있지 않다. 선장은 선박의 조난시 가장 마지막에 퇴선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단 한사람이라도 생존자가 배 안에 남아있는 것이 확실할 때는 선장은 탈출할 수 없도록 되어 있다. 마지막 한사람까지 대피시킬 책임이 선장에게 있고, 따라서 선내의 인원에 대한 구조와 통제는 끝까지 선장이 하게 되어 있다. 일단 배에서 탈출한 사람에 대한 구조나 치료, 혹은 이송은 해경이나 구조단의 소관이지만 선내에 남아있는 사람들은 선장의 책임하에 대피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데 세월호의 경우에는 선장이 제일 먼저 도망쳤다. 이건 살인죄에 해당하는 중범죄다. 세월 호에서 탈출한 사람들이 구조되지 못했거나 혹은 멀리 떠내려 가서 목숨을 잃은 경우 해경의 책임이라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선내에 갇힌 채 희생당한 사람들은 전적으로 선장의 책임이며, 그 처벌은 선장이 받아야 마땅하다. 이런 경우 유가족을 비롯해서 모든 국민들은 선장에게 죽으라고 요구할 권리가 있다. 아직 선내에 살아있는 사람이 있는 한 선장은 배에서 내릴 수 없게 되어 있는 것이다. 만약 승객들이 빠져나오지 못했다면 선장은 그들과 함께 죽어야 하는 사람이다. 왜? 가장 마지막에 내려야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가라앉고 있는 선내에 갇혀있는 사람들에 대한 구조는 해경의 능력과 소관업무 밖의 일이다. 그런 상황을 상정한 훈련을 그들은 받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구조에 필요한 장비도 갖고 있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골든타임 운운하는데, 그 골든타임에 세월 호는 뒤집어지고 있었다. 무슨 놈의 골든타임? 들어가면 죽는 데쓰타임이었다. 세월호 사건에 골든타임은 없었다.
기억이 가물하긴 하지만 포세이돈 아드벤처라는 영화에서도 도착한 구조대원들이 배 안으로 들어가는 시도는 안했던 것 같다. 물 위로 드러난 배 밑바닥을 용접기로 도려내서 사람들을 구해냈고, 배 밑바닥까지 올라온 것은 승객들 자신이었고, 그들을 이끈 것은 용감하고 지혜로운 목사였다. 그 목사는 뜨거운 증기가 뿜어져 나오는 터빈을 닫기 위해 핸들을 감고 나서 떨어져 죽는다. 구조대가 들어가서 꺼집어낸 것이 아니라 승객들이 자기들 힘으로 사지를 빠져나왔다.
해경의 다른 문제들은 여기서 거론하지 않는다. 구조의 책임에 대해서만 얘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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