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의 갈애가 어디서 왔을까요?
원래부터 나에게 있었던 것이라면 그것을 무슨 수로 지워 없앨까요?
그것이 지울 수 있는 것이라면 원래 그것은 나에게 없었던 것이라야 합니다.
갈애가 언제부터 나의 것이 됐는지를 알려면 갈애가 없던 시기의 나를 발견해야 합니다.
갈애는 내가 육신을 갖게되면서부터 갖게된 것입니다. 때문에 육신을 갖기 이전의 나를 확인하지 못하면 갈애가 없던 상태의 나를 알지 못합니다. 과거에 나에게 갈애가 없던 상태가 한순간도 없었다면 앞으로 억겁의 수행을 한다 해도 갈애가 없는 나를 만들지는 못할 것입니다.
갈애로부터 벗어나려면 육신의 옷을 입지 않았던 때의 나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때는 나에게 갈애라는 것이 없었음을 확인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연후에라야 나는 다시 그 상태로 돌아갈 수가 있습니다.
육신은 무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이 세상에 있던 것들의 재결합입니다. 언젠가 죽으면 다시 분해되지만 역시 수없이 다시 결합되어 누군가의 옷이 됩니다. 내 육신이 과거에 없었다면 현재에도 있을 수 없습니다. 현재에 없는 것이면 미래에도 생겨날 수 없습니다. 육신이 생겨난 원인은 육신 뿐입니다.
나의 의식도 마찬가집니다. 그것은 무에서 생겨난 것이 아니고 이미 있던 것의 순환입니다. 의식의 전취인은 의식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미 있었던 의식이 없다면 후에 있는 의식이 생길 수 없습니다.
육신의 재료도 이미 있었던 것이고 의식도 이미 있었던 것입니다. 이 두가지가 시방삼세에 순환하면서 재결합될 때 갈애가 생깁니다. 육신이 사대로 흩어져 있고 의식이 육신의 옷을 입지 않았을 때는 갈애가 생길 리 없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갈애가 생기기 전의 나의 의식을 나는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볼 수 있을 때 나는 그 상태의 의식으로 나를 되돌릴 수 있습니다. 벽운공은 나의 원인인 의식을 발견하기 위한 여행입니다. 내가 육신을 얻어 갈애에 사로잡히기 전의 의식을 인식하는 방법입니다. 갈애에 빠지기 전의 의식은 미약하고 고요하고 청정한 의식입니다. 육신 이전의 정신이고, 나 이전의 나입니다. 그때의 나는 평화롭고 아늑합니다. 선도 악도 아닙니다. 그러면서 우주의 철리에 맞닿은 극도로 선명한 의식입니다. 명료하고 뚜렷한 의식의 세계입니다. 그것을 엿본다는 것은 노자가 말한 황과 홀입니다. 저는 언뜻 언뜻 그 문지방을 넘나듭니다. 여러 가족들과 함께 그 문을 열고 싶습니다. 지혜의 문, 반야의 문...
구름~~
원래부터 나에게 있었던 것이라면 그것을 무슨 수로 지워 없앨까요?
그것이 지울 수 있는 것이라면 원래 그것은 나에게 없었던 것이라야 합니다.
갈애가 언제부터 나의 것이 됐는지를 알려면 갈애가 없던 시기의 나를 발견해야 합니다.
갈애는 내가 육신을 갖게되면서부터 갖게된 것입니다. 때문에 육신을 갖기 이전의 나를 확인하지 못하면 갈애가 없던 상태의 나를 알지 못합니다. 과거에 나에게 갈애가 없던 상태가 한순간도 없었다면 앞으로 억겁의 수행을 한다 해도 갈애가 없는 나를 만들지는 못할 것입니다.
갈애로부터 벗어나려면 육신의 옷을 입지 않았던 때의 나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때는 나에게 갈애라는 것이 없었음을 확인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연후에라야 나는 다시 그 상태로 돌아갈 수가 있습니다.
육신은 무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이 세상에 있던 것들의 재결합입니다. 언젠가 죽으면 다시 분해되지만 역시 수없이 다시 결합되어 누군가의 옷이 됩니다. 내 육신이 과거에 없었다면 현재에도 있을 수 없습니다. 현재에 없는 것이면 미래에도 생겨날 수 없습니다. 육신이 생겨난 원인은 육신 뿐입니다.
나의 의식도 마찬가집니다. 그것은 무에서 생겨난 것이 아니고 이미 있던 것의 순환입니다. 의식의 전취인은 의식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미 있었던 의식이 없다면 후에 있는 의식이 생길 수 없습니다.
육신의 재료도 이미 있었던 것이고 의식도 이미 있었던 것입니다. 이 두가지가 시방삼세에 순환하면서 재결합될 때 갈애가 생깁니다. 육신이 사대로 흩어져 있고 의식이 육신의 옷을 입지 않았을 때는 갈애가 생길 리 없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갈애가 생기기 전의 나의 의식을 나는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볼 수 있을 때 나는 그 상태의 의식으로 나를 되돌릴 수 있습니다. 벽운공은 나의 원인인 의식을 발견하기 위한 여행입니다. 내가 육신을 얻어 갈애에 사로잡히기 전의 의식을 인식하는 방법입니다. 갈애에 빠지기 전의 의식은 미약하고 고요하고 청정한 의식입니다. 육신 이전의 정신이고, 나 이전의 나입니다. 그때의 나는 평화롭고 아늑합니다. 선도 악도 아닙니다. 그러면서 우주의 철리에 맞닿은 극도로 선명한 의식입니다. 명료하고 뚜렷한 의식의 세계입니다. 그것을 엿본다는 것은 노자가 말한 황과 홀입니다. 저는 언뜻 언뜻 그 문지방을 넘나듭니다. 여러 가족들과 함께 그 문을 열고 싶습니다. 지혜의 문, 반야의 문...
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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