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인간의 세세유전 동안에 축적된 모든 정보가 정신계에 존재하는 것을 불교의 유식설에서는 아뢰야식이라고 한다(이에 대해 더 상세하게 아시고 싶은 분은 구르미의 졸저 "마음의 여행"을 한번 읽어보시기를 권한다).
원인이 없는 결과는 없다는 것이 이 물리장내에서의 불변의 법칙이며, 에너지의 총량은 가감이 없다는 것이 우주물리학의 결론이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이미 있는 것이 모습을 바꾼 순환일 뿐, 없던 것이 새로 만들어지는 일은 없다는 얘기가 된다. 우리의 육신도 이미 있던 요소들의 결합이요, 우리의 영혼도 이미 있던 것의 재생이다. 이 재생된 우리 영혼의 오리지널 재료가 되는 것을 불교의 사상으로는 아뢰야식이라고 말한다.
새 생명으로 환생할 때, 그 이전 생의 잔재인 아뢰야식이 옮겨진다고 보는 것이다. 아뢰야식이란 이전의 자기이다. 아니 자기에 대한 정보이다.
그런데 내가 기공을 통해 발달시킨 기감이라는 것으로 체험해 본 결과 이 아뢰야식과 새로 환생한 어떤 사람과의 관계가 어렴풋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내가 지금 추측하고 있는 것은 대개 이렇다.
만약에 구르미의 전생이 조선시대의 황진이였다면 황진이가 죽고나면 황진이의 아뢰야식이 남았을 것이고, 그 다음에 춘향이로 태어났다면 황진이의 아뢰야식이 춘향이한테 옮겨졌을 거다. 그리고 갑순이로 났다가 을녀로 났다가 그 담에 구르미로 났다고 치자. 이 아뢰야식이라는 것이 계속 옮겨다녔다고 생각하기 쉽다. 즉 아뢰야식이 물이고 각각의 사람은 그릇이 된다. 물을 계속 다른 그릇에 옮겨 붓는 것과 같은 개념이다.
나는 "마음의 여행"을 쓸 무렵에는 이런 식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그 후에 계속된 기공수련의 결과 이런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끼게 됐다. 아뢰야식은 그릇을 바꾸면서 채우는 물과 같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 아무리 많은 사람으로 환생을 하면서 새로 태어나고 죽어도 그 각각의 아뢰야식은 고유한 상태로 우주 속에 남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황진이의 아뢰야식, 춘향이의 아뢰야식, 갑순이와 을녀의 아뢰야식은 모두 별개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게 내가 기공을 통해서 얻은 커다란 소득의 하나이다.


다음 글에 계속...



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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