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철학의 정수는 "제행무상"과 "일체개공", 그리고 "제법무아"의 세마디로 압축하여 말할 수 있다. 변함없는 자기의 실존을 의미하는
아트만(眞我)은 불교의 무아사상과 양립할 수 없는 것이다. 자재불성이라는 말도 불교의 진리와는 배치되는 소리다.
그런데도 줄기차게 아트만의 존재를 부여잡고 부처님의 가르침에 도전하는 중생들의 마음 속에는 이 "환생하는 자기"라는 것에 대한 믿음이 있다. 환생설을 부정하지 않는 이상 억겁을 통해 나로 이어진 그 수많은 주인공들의 공통된 인자를 역시 부인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환생을 믿어야 한다면 환생하는 주체인 아트만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논리적으로 맞는 소리다.
환생설과 무아론이 논리적으로 충돌하지 않고 양립될 수 있을까? 이 문제는 오랫동안 내가 사색해 온 화두의 한가지였다. 이런 문제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한 깊은 사색과 명상이 바로 참선이 아닌가 하고 나는 생각한다.
기공수련을 통해서 나는 환생과 무아가 결코 모순을 이루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나는 진아가 없어도 환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무아인데도 끝없이 환생하여 태어나는 세상, 내가 아니면서도 나의 원인이 되는 것이 있다는 사실.
이런 것을 알아갈 때 나는 가장 행복하다. 아는 것이 행복이다.
다음 글에 계속...
그런데도 줄기차게 아트만의 존재를 부여잡고 부처님의 가르침에 도전하는 중생들의 마음 속에는 이 "환생하는 자기"라는 것에 대한 믿음이 있다. 환생설을 부정하지 않는 이상 억겁을 통해 나로 이어진 그 수많은 주인공들의 공통된 인자를 역시 부인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환생을 믿어야 한다면 환생하는 주체인 아트만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논리적으로 맞는 소리다.
환생설과 무아론이 논리적으로 충돌하지 않고 양립될 수 있을까? 이 문제는 오랫동안 내가 사색해 온 화두의 한가지였다. 이런 문제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한 깊은 사색과 명상이 바로 참선이 아닌가 하고 나는 생각한다.
기공수련을 통해서 나는 환생과 무아가 결코 모순을 이루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나는 진아가 없어도 환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무아인데도 끝없이 환생하여 태어나는 세상, 내가 아니면서도 나의 원인이 되는 것이 있다는 사실.
이런 것을 알아갈 때 나는 가장 행복하다. 아는 것이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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