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03  월출산 (용암사지.월남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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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폭포.

 

 

 

하늘문.

 

 

 

 

 

 

 

장군바위.

 

 

베틀바위.

 

 

마애여래좌상(국보 제144호)

  이 불상은 암벽을 불감(佛龕) 형태로 파고 그 안에 높은 돋을새김으로 조각한 고려시대(高麗時代)의 대표적인 마애불이다.

  머리 위에는 크고 높은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있고, 신체에 비하여 비교적 큰 얼굴은 근엄하고 박력있는 느낌을 준다. 오른쪽 어

깨를 드러내고 있는 옷은 얇게 표현하여 신체의 굴곡을 잘 나타내고 있다. 옷주름은 가는 선으로 새겼는데 불상이 앉아 있는 대좌(臺

座) 아래까지 흘러 내리고 있다. 전체적으로 섬세한 옷주름과 양감있는 신체의 표현에서 탄력성과 박진감이 잘 나타나고 있다.

  당당한 신체에 비하여 팔은 가늘게 표현하고 있으며, 손모양은 오른손을 무릎 위에 올려 손끝이 아래를 향하게 하고, 왼손은 손바닥

을 위로 하여 무릎 위에 올린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하고 있다. 광배(光背)는 머리광배와 몸광배를 따로 조각하였으며, 그 안에

연꽃무늬와 덩굴무늬를 새겨 넣고 가장자리에는 불꽃무늬를 새기고 있다.

  전반적으로 안정감과 장중한 인상을 주며, 섬세하고 정교한 조각기법과 더불어 박진감이 잘 나타나고 있다. 반면 신체에 비하여 비

교적 커진 얼굴과 너무 작게 표현된 팔 등에서 불균형한 비례와 경직된 표현이 엿보여 통일신라 후기에서 고려 초기에 만들어진 작품

으로 짐작된다.

 

용암사지.

  용암사는 기암괴석이 많아 남쪽의 소금강이라 불리는 월출산의 구정봉 아래 있다. 300평에 가까운 부지에 수많은 기와조각

들과 주춧돌이 남아 있어 건물이 있던 자리임을 알게 한다. 1955년 ‘용암사’라고 쓰인 기와가 출토되어『동국여지승람』에 기

록된 ‘용암사’임을 알게 되었으나 구체적인 기록은 전하지 않는다.

 

용암사지삼층석탑(보물 제1283호)

  중심 건물터 남동쪽에 있는 이 탑은 일명 ‘탑봉’이라 불리는 바위 위에 세워져 있다. 전체의 무게를 받치는 기단(基壇)을 2단

로 두었으며, 그 위로 3층의 탑신(塔身)을 쌓아 올렸다. 둘레에 구역을 조성한 기단은 각 면마다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 모

을 본떠 새겨 두었다. 기단의 윗면에는 높직한 괴임 2단을 별도의 돌로 끼워 두었는데, 이 가운데 1매가 없어져 1966년 복원

사를 하면서 새로이 보충해 놓았다. 탑신의 1층 몸돌은 2매의 돌로 구성하였고, 2·3층 몸돌은 각각 1매로 하였으며, 각 모서

리마다 기둥 모양을 본떠 새겼다. 지붕돌은 1·2층은 2매로, 3층은 1매로 구성하였으며, 지붕돌 밑면의 받침 역시 1층은 5단, 2층

은 4단, 3층은 3단을 두어 한 단씩 줄어들고 있다. 윗면 모서리는 석탑에서는 흔치 않게 두툼하게 표현하였다. 꼭대기에는 머리

장식을 받치던 네모난 받침돌만 남아 있다.

 

  1966년 무너진 석탑을 다시 세울 때, 아래층 기단에서 백자사리호 1점, 금동보살좌상 1점, 청자대접 1점, 사리 32과, 철편 11점

등이 발견되었다.

 

 

우물.

 

 

와편. 

 

 

 

 

 

 

구정봉 오름길.

 

구정봉에서 바라보이는 천황봉.

 

 

 

 

구정봉 내려가는길.

 

 

 

 

 

 

 

 

 

 

 

 

월남사지 삼층석탑(보물 제289호)

  월남사터에 남아있는 삼층석탑으로, 단층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다. 기단은 바닥돌 위에 기둥

모양의 돌을 세우고 그 사이를 판돌로 채운 뒤 넓적한 맨윗돌을 얹어 조성하였다. 탑신부의 1층 몸돌은 매우 높으며, 2층 몸

돌부터는 그 높이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지붕돌은 기단보다 넓게 시작하였으며, 밑의 받침은 3단을 두었다. 지붕돌의 윗면은 전탑에서와 같이 계단식 층단을 이루

었고, 추녀는 넓게 수평의 직선을 그리다가 끝에서 가볍게 들려있다. 탑신의 모든 층을 같은 수법으로 조성하였고 위로 오를

수록 낮은 체감률을 보인다. 탑의 머리부분에는 받침 위에 꾸밈을 위해 얹은 석재 하나가 남아 있다.

  이 탑은 백제의 옛 땅에 위치한 지리적 특성상 백제 양식을 많이 따르고 있다. 기단 및 탑신의 각 층을 별도의 돌로 조성한

것이나 1층의 지붕돌이 목탑에서처럼 기단보다 넓게 시작하는 양식 등이 그러한 특징이 된다.

  대표적인 백제탑이라 할 수 있는 부여 정림사지오층석탑(국보 제9호)과 비교해볼 수 있으며, 전라도 지역에서는 규모나 양

식으로 매우 중요한 석탑이라 할 수 있다.

 

 

월남사지 진각 국사비(보물 제 313호)

  월남사는 고려 중기에 진각국사에 의해 창건된 사찰로, 창건 이후의 기록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진각국사의 성은 최씨이고 이름은

혜심(慧諶)으로 24세에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나, 어머니의 죽음으로 출가를 하게 되었다. 출가 후 보조선사 밑에서 수도를 하였고 고종

이 왕위에 오르게 되자 대선사(大禪師)가 되었으며, 고종 21년(1234)에 57세로 입적하였다. 월남사 터에 서 있는 이 비는 절을 창건한

진각국사를 추모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비는 거북받침돌 위에 비몸을 올린 형태이다. 받침돌인 거북은 입에 구슬을 문 상태로 긴 목을 빼어들고 네 발을 단단히 짚고 있는데,

그 모습이 매우 강렬하고 사실적이다. 발톱에서 보이는 현실성이나 목과 머리조각의 세부표현 또한 전체적인 균형과 잘 어우러져 한층

돋보인다. 비몸은 원래 매우 컸다고 하나 윗부분이 떨어져 나가고 아랫부분만 남아 있으며, 표면이 심하게 마모되어 비문은 잘 보이지

않는다.

  비문은 당시의 문장가인 이규보가 지은 것으로 전해지며, 비를 세운 시기는 고려 고종 때로 추정된다.

 

 

 

<인터넷 자료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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