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상태에서 생명이 생겨날 수 없다는 것을 실험적으로 증명한 사람은 다 알다시피 파스퇴르입니다. 19세기 중엽에 파스퇴르는 지금의 기준으로
보더라도 꽤 치밀한 실험과정을 통해서 자연발생설을 부정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자연상태에서 생명체는 아니지만 생명체의 하드웨어적인 구성물인 유가화합물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사람은 뮐러입니다. 원시상태의 조건하에서 아미노산과 같은 유기화합물이 저절로 만들어질 수 있다는 데에는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으며 유기화합물의 생성은 필연적이고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오늘날에는 몇종류의 무기물질의 혼합에 특별한 전기화학적 충격을 가해서 유기화합물을 만드는 것은 별시리 기술 축에도 들지 않습니다.
문제는 유기화합물이 어떻게 생명체로 둔갑하는가 하는 것에 국한됩니다. 뮐러의 실험과 파스퇴르의 실험 사이의 간극을 메울 실험 한가지가 빠져있는 것입니다.
20세기초에 파스퇴르의 실험을 부정하는 가설이 세워졌는데, 이것이 오파린-홀데인 가설입니다. 소련의 오파린과 영국의 홀데인 두 사람이 지난 세기에 부정되어서 폐기됐던 자연발생설을 다시 한번 주장하고 나선 것입니다. 원시시대에 지구표면을 가득 덮은 유기물질들 속에서 최초의 생명이 어느날 우연히 나타났다는 가설입니다. 그 뒤를 이은 것이 1952년에 있었던 밀러의 실험입니다.
밀러가 만든 것은 아미노산이었는데, 아미노산은 단백질을 구성하는 분자입니다. 단백질은 20여종의 아미노산이 약 200개 정도가 결합되여 만들어집니다.
그런데 20종류 200개의 아미노산이 결합하여 단백질을 만들려면 대단히 정교한 결합이 필요한데 어딴 학자가 자연상태에서 이런 결합을 하게될 확률을 계산해보니 10의 260승분의 1이라는 계산이 나왔다고 합니다. 이 학자의 계산법이 다소 문제가 있다고 보지만 우연히 단백질이 합성될 확률은 대단히 낮은 것이 틀림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이것이 가능한 한가지 측면을 과학자들이 간과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처음으로 구름이 우리 가족들께 설명을 드립니다.
10의 260승분의 1이라는 확률계산을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자연은 그것의 수천 수만배나 되는 엄청난 횟수의 실험을 할 수 었었다는 사실입니다.
파스퇴르의 시험관 내부와 30억년 전의 지구는 근본적으로 큰 차이점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 이 지구상의 모든 유기화합물에게 던져진 운명은 두가지 뿐입니다. 불에 타고 있던가 부패하고 있던가...
불에 타지도 않고 부패하고 있지도 않은 상태의 유기화합물은 아주 특수한 경우 뿐인데 수천년 동안 보관되어 온 미이라의 시신이나 만년설 속에 묻힌 맘모스의 몸뚱이 같은 것이 그런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유기화합물도 특수하고 예외적인 환경에서 벗어나는 순간 바로 부패하기 시작합니다. 순식간에 허물어지고 맙니다.
느리고 안정적인 연소를 해서 살아있던가 아니면 격렬한 연소(화장으로 시신을 태우는 것과 같은)를 통해 약간의 재와 연기로 사라지던가 아니면 부패하던가의 어느 한가지 상태에 있어야 합니다. 유기화합물은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는 기간이 극히 짧게 제한적입니다. 이런 시간상의 제약 속에서는 생명이 탄생할 정도의 엄청난 횟수의 실험이 반복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30억년 전의 지구는 전혀 달랐습니다. 무기물로부터 자연적으로 합성된 유기화합물은 수백만년, 수천만년의 수명을 유지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아미노산 분자가 하나 생기면 그것이 영원히 존재했다는 사실입니다. 아직 대기 중에 산소가 없었기 때문에 이런 유기화합물이 불에 타서 없어지는 일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아직 생명이 있기 전이었기 때문에 이런 유기화합물을 먹이로 삼는 존재(미생물, 박테리아)가 없어서 부패라는 것이 없었습니다.
불도 없고 부패도 없었기 때문에 한번 합성된 유기화합물은 거의 영원의 시간을 물질로서 존재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만들어지기만 하고 없어지지 않는 유기화합물이 계속 만들어지다 보니 나중에는 거대한 바다 전체가 유기화합물의 죽그릇이 되었고 땅의 표면도 이런 유기화합물에 뒤덮이게 되었습니다.
이것들이 없어지기 시작한 것이 언제부터냐 하면 이런 유기화합물을 먹어치우는 단세포 생명체가 나타난 다음부터입니다. 그것이 박테리아 같은 미생물입니다. 그리고 이 미생물들이 최초의 호흡으로 수소를 이용하게 되면서 생명에 수소를 뺏긴 엄청난 양의 물에서 산소가 남게되었습니다. 이 산소들이 엄청난 두께로 쌓인 유기화합물의 산더미들을 처음으로 태워 없애기 시작했습니다.
즉 생명이 탄생하기 전의 지구는 유기화합물이 끝없이 만들어지기만 하고 없어지지가 않았던 장구한 세월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금방 부패해서 분해되어 버리는 오늘날과는 백팔십도로 다른 본질적인 차이가 있었다는 점입니다.
아미노산들이 한번 생긴 후에 수천만년, 수억년을 존속했다는 말입니다. 이 상태에서는 10의 260승분의 1이라는 확률도 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무한소의 확률은 무한대의 횟수로 극복이 가능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유기화합물이 전 지구를 뒤덮을 정도의 수미산같은 양이 있었고, 그것들이 억겁의 시간동안 없어지지 않고 그대로 존재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 상태에서 생명의 출현은 거의 필연인 것입니다. 불과 20종의 아미노산 200개가 특수한 형태로 만나게 될 확률은 10의 260승분의 1이 아니라 100퍼센트였던 것입니다.
충만한 수기가 목기를 만들고(수생목), 목기가 화기를 만든다는(목생화) 오행론은 진리에 가까운 과학적 법칙입니다.
물이 없으면 나무(생명)가 있을 수 없고, 나무가 없으면 불도 존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수사학적인 비유가 아니라고 제가 처음에 말씀드렸죠. 음양오행의 상생상극은 말장난이 아닙니다. 최고의 엄격성을 가지고 증명하는 과학입니다.
사람들은 지금까지 목생화를 그저 관념적으로만 이해했습니다. 그러나 사실로써 불이라는 것은 나무없이는 이 세상에 나타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음양오행에 대한 선입견은 전부가 제대로 설명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은 도사들의 책임입니다. 한의학도 마찬가지고 고전도 그렇고 불교도 마찬가집니다. 설명할 줄 모르는 바보들이 노력도 안하는 게으름뱅이들이 "말로는 설명 안 되는 것"이라고 벙어리 흉내나 냈기 때문입니다.
동양의 과학은 서양을 앞선지 수천년이고 현재도 앞서 있습니다. 다만 설명할 줄 아는 사람이 없을 뿐입니다.
구름~~
그런데 자연상태에서 생명체는 아니지만 생명체의 하드웨어적인 구성물인 유가화합물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사람은 뮐러입니다. 원시상태의 조건하에서 아미노산과 같은 유기화합물이 저절로 만들어질 수 있다는 데에는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으며 유기화합물의 생성은 필연적이고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오늘날에는 몇종류의 무기물질의 혼합에 특별한 전기화학적 충격을 가해서 유기화합물을 만드는 것은 별시리 기술 축에도 들지 않습니다.
문제는 유기화합물이 어떻게 생명체로 둔갑하는가 하는 것에 국한됩니다. 뮐러의 실험과 파스퇴르의 실험 사이의 간극을 메울 실험 한가지가 빠져있는 것입니다.
20세기초에 파스퇴르의 실험을 부정하는 가설이 세워졌는데, 이것이 오파린-홀데인 가설입니다. 소련의 오파린과 영국의 홀데인 두 사람이 지난 세기에 부정되어서 폐기됐던 자연발생설을 다시 한번 주장하고 나선 것입니다. 원시시대에 지구표면을 가득 덮은 유기물질들 속에서 최초의 생명이 어느날 우연히 나타났다는 가설입니다. 그 뒤를 이은 것이 1952년에 있었던 밀러의 실험입니다.
밀러가 만든 것은 아미노산이었는데, 아미노산은 단백질을 구성하는 분자입니다. 단백질은 20여종의 아미노산이 약 200개 정도가 결합되여 만들어집니다.
그런데 20종류 200개의 아미노산이 결합하여 단백질을 만들려면 대단히 정교한 결합이 필요한데 어딴 학자가 자연상태에서 이런 결합을 하게될 확률을 계산해보니 10의 260승분의 1이라는 계산이 나왔다고 합니다. 이 학자의 계산법이 다소 문제가 있다고 보지만 우연히 단백질이 합성될 확률은 대단히 낮은 것이 틀림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이것이 가능한 한가지 측면을 과학자들이 간과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처음으로 구름이 우리 가족들께 설명을 드립니다.
10의 260승분의 1이라는 확률계산을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자연은 그것의 수천 수만배나 되는 엄청난 횟수의 실험을 할 수 었었다는 사실입니다.
파스퇴르의 시험관 내부와 30억년 전의 지구는 근본적으로 큰 차이점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 이 지구상의 모든 유기화합물에게 던져진 운명은 두가지 뿐입니다. 불에 타고 있던가 부패하고 있던가...
불에 타지도 않고 부패하고 있지도 않은 상태의 유기화합물은 아주 특수한 경우 뿐인데 수천년 동안 보관되어 온 미이라의 시신이나 만년설 속에 묻힌 맘모스의 몸뚱이 같은 것이 그런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유기화합물도 특수하고 예외적인 환경에서 벗어나는 순간 바로 부패하기 시작합니다. 순식간에 허물어지고 맙니다.
느리고 안정적인 연소를 해서 살아있던가 아니면 격렬한 연소(화장으로 시신을 태우는 것과 같은)를 통해 약간의 재와 연기로 사라지던가 아니면 부패하던가의 어느 한가지 상태에 있어야 합니다. 유기화합물은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는 기간이 극히 짧게 제한적입니다. 이런 시간상의 제약 속에서는 생명이 탄생할 정도의 엄청난 횟수의 실험이 반복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30억년 전의 지구는 전혀 달랐습니다. 무기물로부터 자연적으로 합성된 유기화합물은 수백만년, 수천만년의 수명을 유지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아미노산 분자가 하나 생기면 그것이 영원히 존재했다는 사실입니다. 아직 대기 중에 산소가 없었기 때문에 이런 유기화합물이 불에 타서 없어지는 일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아직 생명이 있기 전이었기 때문에 이런 유기화합물을 먹이로 삼는 존재(미생물, 박테리아)가 없어서 부패라는 것이 없었습니다.
불도 없고 부패도 없었기 때문에 한번 합성된 유기화합물은 거의 영원의 시간을 물질로서 존재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만들어지기만 하고 없어지지 않는 유기화합물이 계속 만들어지다 보니 나중에는 거대한 바다 전체가 유기화합물의 죽그릇이 되었고 땅의 표면도 이런 유기화합물에 뒤덮이게 되었습니다.
이것들이 없어지기 시작한 것이 언제부터냐 하면 이런 유기화합물을 먹어치우는 단세포 생명체가 나타난 다음부터입니다. 그것이 박테리아 같은 미생물입니다. 그리고 이 미생물들이 최초의 호흡으로 수소를 이용하게 되면서 생명에 수소를 뺏긴 엄청난 양의 물에서 산소가 남게되었습니다. 이 산소들이 엄청난 두께로 쌓인 유기화합물의 산더미들을 처음으로 태워 없애기 시작했습니다.
즉 생명이 탄생하기 전의 지구는 유기화합물이 끝없이 만들어지기만 하고 없어지지가 않았던 장구한 세월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금방 부패해서 분해되어 버리는 오늘날과는 백팔십도로 다른 본질적인 차이가 있었다는 점입니다.
아미노산들이 한번 생긴 후에 수천만년, 수억년을 존속했다는 말입니다. 이 상태에서는 10의 260승분의 1이라는 확률도 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무한소의 확률은 무한대의 횟수로 극복이 가능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유기화합물이 전 지구를 뒤덮을 정도의 수미산같은 양이 있었고, 그것들이 억겁의 시간동안 없어지지 않고 그대로 존재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 상태에서 생명의 출현은 거의 필연인 것입니다. 불과 20종의 아미노산 200개가 특수한 형태로 만나게 될 확률은 10의 260승분의 1이 아니라 100퍼센트였던 것입니다.
충만한 수기가 목기를 만들고(수생목), 목기가 화기를 만든다는(목생화) 오행론은 진리에 가까운 과학적 법칙입니다.
물이 없으면 나무(생명)가 있을 수 없고, 나무가 없으면 불도 존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수사학적인 비유가 아니라고 제가 처음에 말씀드렸죠. 음양오행의 상생상극은 말장난이 아닙니다. 최고의 엄격성을 가지고 증명하는 과학입니다.
사람들은 지금까지 목생화를 그저 관념적으로만 이해했습니다. 그러나 사실로써 불이라는 것은 나무없이는 이 세상에 나타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음양오행에 대한 선입견은 전부가 제대로 설명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은 도사들의 책임입니다. 한의학도 마찬가지고 고전도 그렇고 불교도 마찬가집니다. 설명할 줄 모르는 바보들이 노력도 안하는 게으름뱅이들이 "말로는 설명 안 되는 것"이라고 벙어리 흉내나 냈기 때문입니다.
동양의 과학은 서양을 앞선지 수천년이고 현재도 앞서 있습니다. 다만 설명할 줄 아는 사람이 없을 뿐입니다.
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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