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15 염불암-양진암-내원암-부도암-비로암-동화사

 

...

 

 

나뭇가지사이로의 염불봉.

 

염불암.

 

 

염불암 청석탑(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9호)

청석탑이란 벼루를 만들던 흑색 점판암으로 만든탑이다. 탑의 몸돌은 없어졌고 10층의 지붕돌만 포개진채로 남아있다. 하부3층과 상부1

층을 제외한 나머지는 파손이 심해 각층마다 빗물받이면에 돌을 괴어 지붕돌 받침이 떨어져 나가는 것을 막고있다.지붕의 두께가 얇고 물

이떨어지는 면은  평평하며 네귀퉁이가 위로 솟아있어 경쾌한 느낌을 준다.  지붕돌의 체감율은 비교적 적은편이지만 넓은 바닥돌위에 놓

인 작은탑이기 때문에 안정감을 준다.

 

염불암 보살좌상(대구 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4호)

이 여래좌상은 아미타불로 네모난 얼굴에 입가에는 미소를 띠고있다. 연꽃이 새겨진 화려한 대좌에 앉아 있는데 대좌의 높이에 비해 무릎

폭이 넓어 안정감이 있다. 

 

남면의 보살 좌상은 관음보살로 추정되는데 머리에 부채골의 화려한 관을 쓰고 잇다. 옷은 상의와 하의를 걸치는 일반적이 보살과는 달리

왼쪽 어깨를 걸치고 오른쪽 어깨를 드러낸 방식으로 입고 있다. 두손목에는 꽃잎이 새겨진 팔찌를 끼고 있으며 무릎위에 얹은 왼손은 관

음보살의 특징인 긴 연꽃가지를 들고있다. 이 불상들은 간결한 선으로 표현 하였으면서도 힘있는 윤곽을 나타내 고려초기에 만든것으로

추정된다.

 

양진암 전경.

 

염불암에서 양진암으로 내려서는길에 되돌아 보이는 팔공산 주능선상의 조암.

 

염불봉(좌)과 조암(우)

 

 

양진암.

"양진"이란 너와 내가 둘이 아니리니 그것이 養眞功德이라 했다. 이곳 양진암은 조선조 1743년에 무주국사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오며 그

뒤 1898년(광무2년)에 춘파화상이 중수 했다고 전해지며 세월의 흐름에 따라 건물이 퇴락하여 현재의 배성연 노스님께서 정화이후부터

지금까지 주석하시며 1980년에 선방을 개축하고 이어서 법보전. 탑. 육화당. 관음전을 신축하시고 지금에 이르렀다.

 

 

지금은 50여명의 비구니 스님들이 참선중이다.

 

 

내원암.

 

내원암 관음전.

 

내원암 전경.

 

 

부도암.

 

부도암 부엌.

 

때늦은 점심 공양.

 

부도암 주방.

 

점심공양을 하고는 그값으로 쌀포대를...

 

윗층 다락방으로 옮겨놓는 일을 하게 된다. 아무래도 밥값으로는 택도 안되는것 같아서리...

 

얼마간의 시주를 위해 관음전을 들르게 된다. 절은 안하지만...

 

 

茶나 머금세...

茶가 있네  茶 머금으면

心身이 맑아지고

 

思母曲.

훨훨 벗어버리고 고향으로 가리니

고희가 넘으신 어머님 눈에는 철없는 개구쟁이로다.

돌아가리라 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돌아가는 인생이지만...

 

부도암의 난방용 땔감. 

 

 

 

비로암.

 

비로암 삼층석탑(보물 제247호)

이탑은 흙으로 넓은 단을 만들고 그위에 2층으로 된 기단을 만든후 3층의 탑을 올린 통일신라시대 석탑의 일반적인 형식을 따른다. 탑의

몸과 지붕은 각각 1개의 돌을 이용하여 짜 올렸다. 탑의 꼭대기에는 네모난 지붕모양의 장식인 노반과 사발을 엎어놓은 모습의 복발 공모

양의 보주가 남아있다. 1967년 해체 보수할때 1층 몸돌에서 부처님의 사리를 모셔두는 사리장치가 발견 되었다. 이사리장치의 하나인 납

석제합의 외면에는 이사리가 863년 신라 민애대왕을 위해 봉안 되었다는 사실을 기록하고 잇다. 이탑은 민애왕이 왕위 다툼 과정에서 억

울하게 죽게 되자 그의 명복을 빌기위해 심지스님이 863년(경문와3년)에 세운것임을 말해준다. 그래서 민애대왕 석탑이라고도 한다.

 

 

비로암 석조 비로자나불 좌상(보물 제244호)

왼손 검지를 오른손으로 가싸쥐고 깨달음과 어리석음이 아나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손모양을 하고있는 비로자나 불상이다. 양쪽 어깨

를 모두  가린 통견(부처가 袈裟를 입는 형식의 한가지로 가사가 양어깨를 모두 가린채 걸쳐진 형태)을 하고 있는데 얇은 옷주름이 규칙

적으로 있다 얼굴은 풍만하고 눈.코.입이 작아지고 어깨가 좁아졌으며 하체의 표현도 둔화되어 통일신라 후기인 9세기 중엽의 것으로 보

인다. 불상뒤에 있는 광배(종교화에서 성신 성자의 뒷면에 광명을 표현한 것으로 머리뒤의 원형것을 頭光 등뒤의 타원형의 것을 身光이라

함)은 빛을 형상화 한것으로 윗부분이 잘록한 배모양을 하고 있다. 광배의 윗부분에는 삼존불을 양쪽에는 각각 네분의 부처를 새겼다. 불

상이 앉아있는 자리인 대좌는 팔각으로 위와 아래에는 연꽃무늬가 있고 가운데에는 구름과 7마리의 사자가 복잡하게 얽혀있어 화려한 느

낌을 준다. 이 불상은 뜰앞에 봉안된 삼층석탑과 함께 863년에 조성된것으로 추정되어 통일신라 시대의 조각양식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이다. 

 

봉서루앞 바위위의 봉황알.

만지면 소원성취 한다고 한다.

 

동화사 대웅전(대구 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0호)

동화사는 신라시대때 처음 지어진후 오늘에 이르기 까지 8차례에 걸쳐 새로 지었다. 대웅전도 여러차레 다시 지어 지금의 대웅전은 1727

년(영조3)에서 1732(영조8) 사이에 건립된것으로 추정 된다. 

 

 

동화사 경내.

 

세월1.

 

세월2.

 

세월3.

 

 

 

 

 

 

동화사 전경.

 

 

 

 

동화사 당간지주(보물 제254호)

당간지주는 당간을 지탱하기 위하여 당간의 좌우에 세운 돌기둥을 말한다. 당간은 당을 달아두는 장대이다. 당은 사찰입구에 꽂는 기당의

 일종으로 사찰에서 기도와 법회등의 으식이 있을때 당간 꼭대기에 달도록 되어있다. 이곳의 당간지주는 당간응 없어지고 돌기둥 두개를

66cm 간격으로 벌려서 세운 것만 남아있으며 통일 신라시대에 제작된것으로 추정된다. 돌로 만든 지주의 안쪽위와 아래쪽에는 기둥을 고

정시키기 위한 구멍이 두군데 있는데 위쪽에는 장방형 아래쪽에는 원형으로 마련되어 있다. 동쪽지주의 아래쪽에 만든 둥근 구멍은 관통

되어 보조대로 고정되고 있다. 지주의 바깥면은 모서리를 죽이고 중앙에 가로로 음각대가 두곳에 새겨져 있다.

 

 

수릉향탄금계 표석(대구광역시 문화재 자료 제 21호)

팔공산 도립공원 관리사무소 앞 공원에 있는 이표석은 산림자원을 보호하기 위해 출입금지구역의 경계를 표시한 것이다. 표석의 "수릉향

탄금계"라는 말에서 수릉은 조선시대 헌종의 아버지인 익종의 능을 말하고 향탄은 왕릉의 유지관리에 쓰이는 나무숯을 말하며 금계는 출

입금지 구역의 경계를 뜻한다. 그러므로 이표석은 수릉에 사용되는 나무숯의 생산을 위해 산림을 보호해야 하므로 일반인의 출입을 금한

다는 뜻을 담은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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