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루돌·벼리길 연원을 찾아 | ||||
| ||||
울산지역은 1억년 전 백악기에 공룡이 살았던 곳이다. 공룡이 물먹고 서성이던 호숫가 부근에 남겨진 퇴적물로 구성된 물렁한 흙 판이 오래되니 돌덩이처럼 굳어져 퇴적암층이 됐다. 억년 동안 두껍게 쌓인 퇴적암은 화산이 폭발하고 땅이 뒤틀리고 흔들거리면서 갈라지기도 하고 밀리고 당기고 아래위로 올랐다가 내려앉고 또 꺼지졌다. 그런 가운데 산이 되고 계곡이 만들어 졌다. 지각(地殼)은 온통 야단법석을 떨었다. 호숫가에 공룡이 남긴 움푹 파인 발자국 안에 모래나 화산재가 쌓여 굳은 퇴적암층 주변에서 화산이 폭발하여 그 열기가 이 퇴적암층을 달궈 그 성질을 변하게 했다. 통칭하여 접촉 변성암 또는 혼펠스(hornfels)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 혼펠스층은 지각의 조산운동 등으로 노출되거나 절단되고, 그 반반한 판위에다 선사인은 바위그림을 새겨 놓았다. 물가나 지표에 노출된 움푹 파인 공룡발자국 화석에 담긴 빗물을 보고 옛 사람은 먹물을 담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산이나 강가에 널브러져 있는 이 혼펠스 쪼가리에다 조각한 이 벼룻돌은 한자로 ‘硯’(연) 자를 빌려와, 연석(硯石)이라고도 한다. 벼루는 편리(片理)를 나타내지 않는 이 돌의 특성을 지극히 잘 응용한 것이라 하겠다. 한편 이 돌을 가져와 칼 가는 숫돌로 사용하기도 했다. 세계에서 가장 갖고 싶어 하는 벼루가 중국 광둥성 돤시(端溪)에서 생산되는 두완스(端溪石)이고, 흔히 우리나라에서 그 돌로 만든 벼루를 ‘단계연(端溪硯)’이라 한다. 우리 나라에선 전남 해남과 충남 보령의 남포에서 생산되는 벼루가 유명하다. 두 지역은 백악기의 퇴적암을 기반층(基盤層)으로 깔고 있다. 울산지역 역시 백악기의 퇴적층으로 습곡(褶曲)을 거의 받지 않은 수평 지층이며, 경상남북도에 주로 분포하여 경상누층군이라 하고, 육지의 호수나 강가, 습지에서 생성된 퇴적층으로 육성퇴적층이라 한다. 여기에 화산의 폭발로 인한 쇄설성 퇴적암이 혼합되어 나타나는 층, 이른바 호층(互層)이다. 두동면 사연댐 인근은 사연리층이라 분류한다. 언양읍 대곡리 반구대암각화 일대에 널브러져 있는 퇴적암 등이 여기에 속한다. 대곡리공룡발자국화석지 가는 길을 따라 가면, 반구서원에서 출발하여 맞은편의 향로봉 아래에 난 오솔길의 구릉을 거의 다 올라 간 지점에서 금석문을 만난다. 「順治 十二年 乙未年 二月十八日 硯路 ○○工事 施主 性今 金○ ○ 兪○○ 朴命卜 位 化主○○人 ○○石手方文」 10여 년 전에 찾았을 당시 금석문 위에 누구보고 보랬는지 붉은 페인트로 쓴 ‘방첩 반공’이 매우 이채롭게 다가왔었는데, 얼마 전에 이 금석문을 말끔히 정리해서 보호하고 있다. 금석문 내용에 나오는 순치 12년은 조선 효종임금 6년인 1655년이다. 이 해에 이 동네에 무슨 일이 생겼을까 상당히 궁금하여 수소문 해 보니, 금석문이 새겨진 코밑의 매우 협소한 이 토끼길을 지금 수준의 2/3정도 폭을 넓히는 토목공사가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간혹 마을 사람이나 소금장수들이 이 벼랑길로 지나다니다가 떨어지는 사고가 나기도 해서, 마을 유지의 시주로써 길을 넓혀 범서읍 사연리로 가는 안전한 길을 확보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기부금 명단이 기록된 금석문에 나오는 ‘硯路’는 이곳 ‘벼랑길’을 가리킨다. 벼랑길은 벼리길 또는 벼루길이라고도 부른다. 그래서 이 길을 한자로 표기하면서 벼루 ‘연’자를 사용한 것이다. 이 동네에서 채취한 돌로 만든 벼루는 어떤 이름으로 불릴까? 혹여 아직 이름이 없다면 반계석(盤溪石)의 반계연(盤溪硯)은 어떨는지. 반구대에서 ‘盤’, 반계구곡(九曲)의 계곡에서 ‘溪’를 따와서 반계연(盤溪硯)이라 부르고 싶다. 최근 반구서원 인근에 벼루를 만드는 공방이 있음을 보면서 벼룻돌의 시원을 따라 가 보았다. | ||||
'스크랩 > 문화. 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수천년전 해양문명 ‘고래숨결’ 고스란히 (0) | 2011.05.02 |
---|---|
정몽주-언양 ‘반구대’ (0) | 2011.05.02 |
반구대 암각화 (0) | 2011.05.01 |
반구대 (0) | 2011.05.01 |
반구대를 예찬한 '반구십영(盤龜十詠)' (0) | 2011.05.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