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구대(盤龜臺)
반구대는 언양에서 동북쪽으로 약 10㎞ 떨어진 대곡리의 반구마을 입구에 있는데, 대곡천변(大谷川邊)의 남안(南岸)에 기암절벽이 우뚝 솟아 올라 놓은 대(臺)를 이룬 곳이다. 그 앞에 거북의 목과 같이 낮게 뻗어 동쪽으로 길게 머리를 내밀었으니 이것을 귀두(龜頭)라 하여 곧 반구대라 명명(命名)된 것이다.
이 귀두에는 고려 말의 충신 포은 정몽주(鄭夢周)가 언양 요도(蓼島 : 어음리)에 귀양와서 적소(謫所 : 귀양살이 하는 곳)에서 우거(寓居 : 남의 집이나 타향에서 임시로 몸을 의탁하여 삶)할 때 자주 와서 경관을 즐겼으며, 그를 찾는 많은 이 지방 유생(儒生 : 선비)들에게 교훈을 남겼다. 그리고 조선조의 성리학자 회재 이언적(李彦迪), 한강 정구(鄭逑) 같은 고명한 학자들이 이곳을 찾아 경관을 즐기며 문풍(文風)을 진작시키고 명시를 남겼는데, 여기를 가리켜 포은대(圃隱臺)라고도 한다. 또 여기에는 반고서원유허비(1901)가 있다. 이 주변에는 위의 삼현(三賢)을 모신 반구서원을 비롯하여 집청정(集淸亭), 모은정(慕隱亭) 등이 있어 주변 경관과 어울려 절경을 이루고 있으며, 역사에 저명한 현인군자들의 명시가 원정(院亭)의 누각마다 빼곡이 걸려 있다. 특히 제암(霽巖) 최종겸(崔宗謙 : 1719∼92)은 그의 문집「제암집」에 집청정(集淸亭)·비래봉(飛來峰)·향로봉(香爐峰)·옥천동(玉泉洞)·포은대(圃隱臺)·선유대(仙遊臺)·관어석(觀魚石)·망선대(望仙臺)·완화계(浣花溪)·청몽루(淸夢樓) 등 오언절구(五言絶句) 8수를 읊어 이른바 <반구십영(盤龜十詠)>이라 하였다.
또 이곳의 계곡 북쪽에는 천전리각석(국보 제147호)이 있고, 남쪽 약 1.5㎞ 지점의 계곡 암벽에는 청동기시대의 수렵·어로의 벽화(대곡리반구대암각화 : 국보 제285호)가 남아 있어 사학자·고고인류학자·미술사학자들의 지대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옛 선비들이 이곳의 풍광을 '구곡청절반구대(九曲靑節盤龜臺)'라 한 것은 포은 정몽주의 애국충절이 깃든 유서깊은 곳이란 뜻의 비유일 것이다.
→ <사화·전설> 중 '반구대 설화'와 '정몽주와 요도의 적소'조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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